어쩌면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미국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지만 그나마 있는 것 중 하나는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햇살을 맞으며 라떼 한 잔을 마시는 일이었다. 동네에 야외 좌석이 있는 예쁜 카페들을 몇 군데 발견하긴 했지만 선뜻 내 환상을 바로 실천할 순 없었다. 기본적으로 이런 카페들의 라떼 가격은 $6~7 정도 했는데 가게에서 마시려면 의무는 아니지만 보통 10~20%의 팁까지 내야 하다 보니 거의 $9를 지불해야 했다. 최근의 치솟는 환율을 적용하면 원화로 거의 만삼천 원 꼴이 되는 것이다. 햇살을 맞으며 라떼를 마실 수는 있겠으나 마음은 전혀 여유롭지 않을 가격이었다.
그래서 집에 각종 커피 장비들을 쟁이고 있었는데, 번거롭고 품은 들지만 진정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위해선 이렇게 하는 편이 나은 듯했다. 그중 하나가 미니 거품기였다. 아메리카노의 경우 커피빈을 수동그라인더로 열심히 갈아 드립으로 내려마시니 꽤나 만족스러웠는데 라떼는 그렇지 못했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우유를 부은 들 카페에서 마시는 그 라떼맛이 나지 않았다. 우유 거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정말 컸다. 라떼 한 모금에 기대되는 그 부드러움은 단순히 데운 우유가 아닌 거품을 낸 우유에서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마존에서 라떼 한잔 가격보다 싼 미니 거품기를 $3.99에 구매하여 엉성하나 갖출 건 다 갖춘 홈카페를 완성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열심히 라떼를 위한 거품을 만들던 중 문득 거품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시각들이 떠올랐다. 버블경제, 자산가격 거품, 허황된 희망, 터지면 사라질 찰나의 무언가. 거품은 사람들을 현혹시킨 후 영속하지 못하고 곧 사라질 것으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거품 빠진 라떼는 그저 우유 섞인 아메리카노에 불과할 정도로 거품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처럼 거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는 누구보다 거품을 경계해 왔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입사 전까지만 해도, 브랜드별로 모으던 립스틱, 단순히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으던 빨간색 물건들, 직접 방산시장에 가서 향수 원재료를 사다가 좋아하는 향을 조합하여 만든 고체향수들까지. 입사 후에는 시간이 부족하단 이유로 또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이유로 하나둘씩 단순히 좋아서 선택하고 행위하던 것들을 거품이라 칭하고 스스로 포기시켰는데, 정말 거품은 아무 의미가 없는 피해야 할 것이었을까.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매번 똑같은 라면을 사는 류준열 님을 보고 전도연 님이 이런 말을 한다.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좋은 거예요라고. 지금의 내 상황에서 너무나 공감 가서였을까, 이 대사 한 줄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종종 떠오른다. 내가 거품이라 경계하고 애써 외면하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좋아하던 거였을 텐데, 십 년 가까이 좋아하던 것을 해야 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훈련을 통해 이제는 점심 메뉴조차 선뜻 고르지 못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버렸다.
미국에 와서는 조금씩 내 일상 속에 부드러운 라떼 거품을 하나 둘 늘려가려고 노력 중이다. 마트에서 세 가지 향이 들은 캔들 번들을 사서 자기 전 날마다 다른 향을 맡으며 요가를 하고, 자기 계발서나 재테크 도서가 아닌 이동진 님이 추천하신 소설책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이것들이 당장에 내 통장계좌 잔고를 늘려주거나 더 높은 지위로 상승시켜주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에서 아무 작용을 하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이는 그간의 나의 침잠과 지금의 도망침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거품이 라떼 속에서 부드러운 맛의 상승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해내고 내 몸에 흡수되듯이, 눈앞의 거품은 사라질지언정 결국엔 그 거품은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닐까.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보글보글 풍성해지는 중은 아닐까. 그리고 이 거품들이 하나 둘 모여 모나지는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바쁘고 각박해지더라도 거품기를 손에서 놓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