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심문하기, 끊임없이

FOMO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한 방법 하나

by 유연

미국 MBA에서 첫 학교생활은 기본 오레인테이션으로 시작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는데, 이번 주에 진행되었던 첫 번째 파트는 주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고 네트워킹을 하는 방법과 소위 DEI(Diversity, Equity, Inclusiveness)라고 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물론 약 200여 명의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강당에서 10분마다 계속 짝을 바꾸어 대화해야 했던 경험을 포함해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일들이 많았지만, 이 부분은 다음에 '다름'에 관한 주제로 다루어보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고 잠을 설치는 날이 잦았는데, 이는 아마도 불안감, 좀 더 자세하게는 FOMO(Fear of Missing Out)에 하루 종일 압도당해서인듯했다.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미친 스펙을 지닌 학우들을 만났고, Whatsapp에는 수많은 맥주파티, 동아리 및 여행 트렉(Trek : 라스베이거스, 페루, 탄자니아 등 주말이나 방학동안 희망자들끼리 모여 가는 단체여행) 초대 글이 넘쳐났다. 각종 커리어 네트워킹 행사들이 개최되었고, 샌프란시스코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빅테크 기업을 목표로 하는 학우들을 대상으로 창업과 PM(Product Manager) 커리어 관련된 행사들이 많이 개최되었다. 하루 프로그램이 끝나면 나는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었는데, 다른 학우들은 BOTW(Bar Of The Week)라며 무리 지어 바에 가서 칵테일과 맥주를 마시며 활발하게 '소셜라이프'를 즐겼다.


한국에서 경험은 초라해질 만큼 이곳에서의 소위 '바람직한 또는 따라가야 할 길'들은 미국의 땅덩어리 크기만큼이나 방대했다. 커리어 목표, 업적, 소셜 모임과 네트워크 행사들까지. 주변에 수많은 선택지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여서일까. 한국에서는 무지성으로 FOMO에 떠밀려 남들 한다는 것들을 좇았던 내가 이번에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한 발짝 물러나 내가 MBA 생활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차분하게 다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한국에서 겪은 침잠이 준 교훈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운 좋게 '객관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는다 할지라도 내가 진정 원해서 얻은 게 아니라면 아무런 만족감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잠도 푹 자고 활기차게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내가 기록했던 메모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선배와의 대화 세션에 패널로 초대된 2학년 선배 한 분이 해준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개최된 빅테크 기업 관련 PM(Product Manager) 네트워킹 이벤트에 100명이 넘는 학생이 참석했다. 그 백여 명이 모두 PM 커리어를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다들 간다길래 따라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너네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남들이 많이 한다고 무작정 따라 할 게 아니라 정말 너네가 관심 있는 활동에만 참여해도 충분하다. 앞으로 수많은 소셜모임과 여행 트렉들이 있을 텐데, 내가 학기 초반 8월에 주로 만나던 무리들이 12월 즈음되니 다 바뀌어있었다. 진정 마음이 통하는 친한 무리를 만드는 데 3달은 족히 걸렸다. 그러니 지금 너무 조급해하며 모든 걸 다 해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분의 조언 중 가장 나에게 경종을 울리던 말은 '이곳에 온 이유는 너희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이다'였다. 결국 FOMO를 이겨내는 힘은 확고한 나 자신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할 때 비로소 주변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오리엔테이션 막바지 진행되었던 강의에 대해 메모가 남겨져있었다.

포용적 문화에 기여하는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정체성(Identity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심문해야 합니다(You need to interrogate yourself endlessly). 사람은 현재 처한 상황과 과거 경험에 따라 늘 바뀌기 때문에 항상 '이것이 진정 내가 추구하는 것인지, 내 가치에 부합하는지' 반문한 뒤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interrogate"란 단어를 쓴 것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주로 범죄영화에서 경찰이 범죄자를 심문할 때 들었던 용어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질문(ask) 수준을 넘어 심문(interrogate)에 가까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리고 이것은 평생 실천하는 과업이라는 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임과 동시에 큰 깨우침을 주었다.


사실 아직은 내가 가치관이나 커리어 측면에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내 앞에 펼쳐진 수많은 선택지들 앞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먼저 나부터 심문한 뒤 'yes or no'를 결정하기로 다짐했다. "이게 진짜 네가 원하는 거야? 이걸 하면 네가 즐거울 거 같아? 이게 너에게 힘을 줄 거 같아?" 작은 것이라도 선택하고 행동하기 전에 엄중한 시선으로 나 스스로를 캐묻고, 범죄자가 범죄사실을 실토하듯 나로부터 되돌아오는 답변이 '진실된 시인'일 때 비로소 'go for it!' 하는 걸로.


이쯤 되니 오히려 MBA에 와서 수많은 선택지들에 휩싸인 것이 다행이다 싶다. 2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나 자신을 심문하는 것을 연습하게 될 텐데, 이는 나를 이해하고 중심을 잃지 않도록 훈련시켜 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길의 끝에 당당하게 "잡았다 요놈" 하며 도피하던 나를 체포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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