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제어센터 커스터마이징'에 관하여
미국 MBA에 와서 실감하는 것 중 하나는 '압도적인 양의 정보'이다. 우선 학교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크게 Academic과 Career 자료로 나뉘는데, 자료를 가득 담은 물풍선이 내 정수리 위로 끊임없이 떨어져 터지고 있다. 매 수업시간마다 사전 읽기 자료, 관련 기사 등 교수님들이 공지글을 통해 자료 뭉태기를 내 울타리 안으로 던져주신다. 학교에서는 커리어 훈련세션, 선배와의 대화, 졸업생 초청 강연, 인턴십 공고 등 여름인턴십을 성공적으로 따내기 위한 온갖 정보들을 미친 듯이 발사한다.
물론, 온갖 친목행사도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폭죽처럼 터져 소란스럽지만, 무엇보다 가장 내가 따라잡기 힘든 건 이러한 정보제공의 창구가 다양한 채널로 흩어져있다는 점이다. 학교수업포털, 이메일, Whatsapp, Slack, 커리어센터포털 등 여기저기 팝업이 뜨다 보니 '정신 사납다'는 표현이 자꾸 떠오른다. 이건 내 성향도 한몫하는 듯한데, 평소에도 나는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면 어지러움을 느껴 쇼핑을 즐기지 않았고, 유튜브나 인스타의 숏폼 역시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 빠름을 잘 견디지 못했다.
한국에서 회사와 집안일을 병행하다 보면 해야 할 to-do list들이 물밀듯이 몰려왔었다. 나는 주로 기계가 되어 미친 듯이 나를 채찍질하고 하루를 10분 단위로 쪼개 시간을 쓰며 모든 퀘스트들을 끝내기 위해 나를 몰아세우곤 했다. 이렇게 잠시도 멍 때리거나 쉬는 시간 없이 지내다 보면 뇌가 과열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실제로 머릿속에 뇌가 핑핑 도는 느낌인데, 모터가 계속 돌아가다 공회전하는 상태에 다다른다. 그리고 이러한 몰아침의 결과는 참혹했다.
학기 시작 후 수업과 커리어 활동들에 참여하다 보니 어느새 내 캘린더의 빈틈이 모두 사라졌다. 평일에 시간이 도저히 안나 일요일에도 수업준비와 인턴십 관련 리서치를 하며 나를 몰아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뇌가 또 과열되는 것을 느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이러다가는 또다시 중심을 잃고 급류에 휩쓸리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목적 -건강을 되찾고 나를 되찾는 것- 을 떠올리고는 심호흡을 한 뒤 과감하게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 십분 이렇게 멍 때리고 있었나. 그랬더니 팽팽 돌아가던 뇌가 잠잠해지고 고요해졌다. 이윽고 캘린더를 보며 '무엇을 추가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삭제할까'를 질문하며 취소할 수 있는 것들을 빼기 시작했다. 주말피크닉 모임들을 취소했고, 자원봉사와 커리어훈련세션들도 취소했다. 그러자 비로소 캘린더에서 하얗게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사람들은 매우 바쁘게 산다. 어느 정도 중간직책을 맡게 되면 주 60시간 정도 일을 하고, 이 사이사이 자녀 픽업 일정들이 끼어져 들어간다. 취소할 수 있는 것들은 삭제했으나 여전히 캘린더는 빼곡하고 시험기간이나 리쿠르팅시즌이 되면 캘린더는 더욱 빼곡해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MBA가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엄청난 퀘스트가 홍수처럼 밀려들어올 것이다. 이런 바쁜 일상 속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비록 찰나일지언정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쉬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힘이 필요하겠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폰 제어센터에는 많은 제어 토글들을 추가할 수 있는데, 방해금지모드를 누르면 그 후부터는 전화, 문자, 다른 어떠한 알림도 울리지 않는다. IOS 업데이트 이후 제어센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확대되어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처럼 제어센터를 꾸미는 방법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핸드폰만 꾸밀게 아니라 마음속 제어센터도 가꾸어보려고 한다. 이번 주는 방해금지모드 토글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꼭 나를 단절시키지 않아도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면, 그땐 화면밝기와 음량조절 토글을 추가해볼까 한다.
지금도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속에 지쳐가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최소한 방해금지모드 버튼만큼은 장착되어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