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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금 Jun 19. 2022

나의 동물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런 감정도 추앙인가?  



사랑하는 고양이 토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2015년에 태어난 토리의 정확한 생일은 모른다.

길냥이 출신인 토리를 바라보다 보면 가끔 부모님이 어떤 고양이일까 궁금해지곤 하는데,

양친 모두 잘 생겼으니까 이렇게 잘 생긴 녀석이 나왔겠거니 추측만 해볼 뿐이다.

‘넌 부모님 안 궁금해?’라고 말을 걸어봐도 속내를 알 순 없다.



토리는 원래 코미의 동생이 되어 함께 살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이좋은 냥이 남매가 되어 잘 지내길 바랐던 토리 새부모님의 기대와는 반대로,

처음 동생을 만난 코미의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몸상태가 나빠질 만큼 힘들어하는 코미가 안쓰럽고 토리도 짠해 보여

토리 부모님은 한동안 둘 사이의 거리를 두는 게 낫겠다 판단했다.

그렇게 당분간 우리 집에서 토리를 맡게 된 것이 관계의 시작이었다.


폴짝 뛰는 토리.내가 그리는 고양이 그림은 모두 토리가 모델이다.


돌아보면 토리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다.

당시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끼 고양이의 에너지를 받아줄 체력이 없었다.

야행성이니만큼 밤에 마음껏 놀게 해줬어야 하는데,

집사인 나는 원래도 기력이 넘치는 타입이 아닌 데다가

잠을 잘 못 자면 다음 날 출근 후 고생할게 뻔해서 마음을 많이 못썼다.

밤에 애웅 애웅 애처롭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을 청했다.

요약하면, 나는 예쁘다고 사진을 많이 찍었고 뒤치다꺼리는 W가 더 많이 했다.

지금도 그때 얘길 하면 독박육묘는 본인이 했다며 투덜댄다. (맞아~)


약속했던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나고 토리가 원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는

말도 못 하게 마음이 휑해서 혼자 눈물을 훔쳤다. 출구 없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2018년, 토리네에 사정이 생겨 또 한 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이땐 나도 프리랜서였고 집에서 일했기 때문에 원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2018년은 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평온하고 행복했던 한해로 기억한다. 다 토리 덕분이다.

고양이는 장소가 바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동물이라 토리 역시 힘들었겠지만

우리 집에 적응한 이후에는 꽤나 느긋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줬던 터라

토리에게도 나쁜 기억으로 남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응가가 똥꼬에 매달린 채로 화장실 밖에 나와서 나도 당황, 토리도 당황했던 적이 있다.


‘너 그 상태로 내 손 안 닿는 곳에 숨어버리면 안 돼. (응가 어떻게 치워.. ㅠ)’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이걸 어쩌지’ 하는 듯 흔들리던 토리의 동공.


서로가 얼어붙은 채로 눈빛을 주고받다 마침내 토리가 움직이던 찰나,

응가가 알아서 안방 바닥에 잘 떨어져 줬다.

어찌나 다행이던지, 살다 살다 고양이 응가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진 적은 처음이다.

고장난듯한 토리를 모델로 그린 그림


에피소드 둘.

영화를 보다가 선반 위에  컴퓨터를 올려둔 채로 잠이 들었다.

새벽에 와장창 하는 소리와 토리가 후다닥 도망가는 기척이 들려 ‘오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것만은 아니길’ 하며 눈을 떴다.

네, 그렇습니다. 아이맥은 그 길로 운명하셨습니다.

올려둔 내 탓을 하고 싶진 않다. 평소에는 토리가 안 건드리고 잘 지나다녔단 말이지.

새 컴퓨터 장만하느라 가계가 휘청거렸지만,

‘그래 네가 안 다쳤음 됐지. 치료비로 쓴 돈은 아니잖아.’ 라며 정신승리로 이겨냈다. ㅠㅠ


솔직히 말해 토리는 개냥이라 불릴 만큼 친화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나를 무척 따르는 것도 아니다.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 같지도 않고, 자기 아쉬울 때만 나한테 친한 척하는 면모도 있다.

예쁘다고 달려들면 귀찮아하면서 쳐다보지 않으면 자기 좀 봐달라고 애옹 대는 특이한 관종이기도 하다.

잘생긴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흔한 고양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에게는 내가 마음 쓴 만큼 돌려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데 반해

이 친구한테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그저 건강과 안녕만을 기원할 뿐.

내 인생 최초의 동물친구,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존재.

나만 혼자 절친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도 섭섭하지 않은 영원한 내 최애.


그렇게 나의 감정은 고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서 한 뼘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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