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흑역사 썰
이젠 찜통더위가 시작된 걸까? 선풍기로 땀을 식히며 바다가 있는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적어본다.
이집트에 안 왔다면 모를까 죽기 전에 홍해의 아름다움은 한 번 감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보기로 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긴 셈.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처음 접해본 산소통에 다이빙복 무게부터 버겁게 느껴졌고 (아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었나?)
위급 상황을 대비해 둘씩 짝을 지어 산소를 나눠 쓰는 연습을 할 때엔 공포를 느꼈다.
급기야 오픈워터 과정 대망의 3일 차(마지막 날),
수심이 점점 깊어질수록 산호초와 예쁜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환상적인 풍경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때,
갑자기 이퀄라이징이 잘 안 되면서 코피가 흐르고 두려움에 얼어붙은 나는 패닉에 빠져버렸다.
강사님이 분명 급작스럽게 수면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감압병(잠수병)의 위험 때문)
너무 무서운 마음에 그걸 어기고 정신없이 물밖으로 나와버렸다.
나 때문에 우리 조는 제대로 다이빙을 즐기지 못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
강사님한테도 따끔하게 혼나고 너무 죄송해서 고개를 못 들었다. ㅠㅠ
흑역사를 만들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오픈워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보통은 이틀을 더하면 딸 수 있는 어드밴스 자격까지 쭉 이어가고
그러다 스쿠버다이빙에 심취한 사람들은 전문가/강사 과정까지 밟게 된다.
더한 사람들은 장기 여행 중에 다합에 아예 눌러앉기도 했다.
(내가 다합에 머물렀을 때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강사님도 그런 케이스였고.)
나는 오픈 워터만 따고 더 이상 도전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더위와 싸워야 할 이유도, 자신도 없고 그저 살아있는 것이 그날의 과제처럼 느껴져
다합에서의 일과는 보통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늘어져 있거나 퍼져있는 게 전부였다.
물담배도 시도했는데 그 맛이 딱히 내 취향은 아니어서 한두 번 체험해보고 말았다.
홍해의 매력에 빠진 채 하루하루를 늘어지게 보내는 재미에 중독되면 바로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니고 무엇?
어째서 장기 여행자들이 다합을 못 떠나는지 너무나 잘 알겠더라.ㅎㅎ
떠나던 날 숙소에 머물던 수강생들과 강사님이 배웅 나와주셔서 감동받았던 추억으로 마무리한 다합 여행.
그때 놓친 홍해의 다이빙 포인트.. 다시 보고 싶긴 하지만.. 역시 떨린다.
2009. 09.
Dahab, Egy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