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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헌 교수님

통섭과 감정과학

by LEESHOOP 리슙



저는 2011년에 교수님의 <책 읽기> 수업을 들었던 의상디자인학과 00학번 000라고 합니다. 2학년 2학기 때였죠. 당시 저는 머릿속 이상을 받쳐줄 만한 손재주가 없어 전공에선 항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재수까지 해서 겨우 들어간, 그렇게 원하던 학교와 과였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완전 딴판이더라고요. 그림은 그런대로 봐줄 만하게 그렸으나 옷은 진짜 못 만들었습니다. 영 신통치 않았어요. 의복 구성이던 편물이던 염색이던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내내 비참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게는 전공 수업이 돌 같았고 교양 수업이 단비 같았습니다. 수강 신청할 때면 언제나 전공보다 교양 수업 고를 때가 더 설레고 떨렸죠. 패션 전문학교가 아닌 종합대학의 의상디자인학과를 다닌 게 얼마다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졸업하려면 반드시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양 학점이 정해져 있던 거도요. 오죽하면 전공 필수 학점은 항상 최소만 맞추고 교양을 더 꽉꽉 채워놓고 살았을까요. 아마 열일곱 살부터 스무 살까지 한 길만 죽어라 따라 게 아주 이골이 났었나 봅니다. 그 길은 숨도 못 쉴 만큼 아주 좁았거든요. 아니면 사실은 책과 다른 현실 그러니까 다양성 없는 일방적인 일관성에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는지도요.


그때 교수님 수업을 들은 게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다행이고 행운었는지 모릅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거든요. 그동안 타인이 보는 시선으로 나를 볼 줄만 알았지 내가 나를 볼 줄은 몰랐다는 사실을요.



"내 감정이 소중한 줄 알이야 타인의 감정도 소중한 줄 안다."



교수님, 그때 가르쳐주신 그 말씀을 제가 지금도 쭉 간직하고 있다 믿어주시겠나요? 머릿속에도 핸드폰도 취업 준비부터 이직까지 써낸 수십 장의 자기소개에도 교수님의 말씀이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재 2022년을 마지막으로 패션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옷이 지구에 너무 많은 거 같아서요. 제3세계 국가에 산더미처럼 쌓인 옷들 사이로 소들이 천을 씹어먹는 걸 보니 더 이상 '가담'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게 1월 겨울에 퇴사를 한 후 여름부터 엄마와 같이 과 학원을 차려 중고등학생을 르쳐 왔습니다. 엄마가 수학을 제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죠.


개원 후 약 1년 뒤인 2023년 가을부터는 학원 블로그를 만들어서 매일 글을 하나씩 올리고 있는데요. 여기에도 당연히 교수님 말씀을 써놓았습니다. 사실 블로그에는 어거지로 쓴 티가 역력한 혹은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다른 글들도 많지만, 그날만큼은 교수님의 그때 그 말씀을 떠올리며 진지하게 썼죠. 그게 작년이었네요.



던 올해 2월었습니다. 방문자가 어떤 검색어 블로그에 들어오게 됐는지 살피던 중 '전헌 교수'라는 반가운 검색어를 보게 됐죠. 검색어를 그대로 타고 가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에서 하신 인터뷰도 보게 됐고, 교수님이 쓰 책 《다 좋은 세상》도 알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정과학을 연구하통섭학자라는 사실도요. 사실 저는 또 다른 통섭학자인 최재천 교수님을 참 좋아하고 존경해서 책도 여러 권 읽고 유튜브도 종종 봤었는데요. 이렇게 우리 교수님도 통섭학이시라는 얘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검색어로 이렇게 연결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죠. 세상 참 좋아지지 않았나요? 그렇게 저는 들뜬 마음으로 책 《다 좋은 세상》에서 교수님의 두 번째 수업을 듣게 됐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교수님, 제 인생의 교차점에서 침반이 되어주셨던 교수님이 사실은 감정과학자이셨다는 걸 알게 되어 이번 여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도, 타인의 감정과 내 감정을 구별할 줄 알아야 비로소 타인도 지키고 나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처럼요. 좋은 가르침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저의 감정을 돌봐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도 교수님처럼 살리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다 좋은 세상 비며 살아볼게요.





왼: 전헌, 《다 좋은 세상》ㅣ오: 최재천, 전헌 외 8명, 《문화교차》



"퇴계는 감정이 곤두박질치고 걷잡을 수 없을 때 그 이유를 스스로 자기감정 안에서 찾으면 예외 없이 타고난 자기감정 안에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아닌 남들의 일을 자기감정의 원인인 줄로 잘못 안 것을 본다는 것이다.

감정은 영원 무한한 것이라 스스로 잘못될 이유가 없지만, 영원 무한하기에 나와 남을 나누지 않다 보면, 서로 다르고 늘 바뀌는 남의 일과 사정을 자기 것이겠거니 잘못 알기 십상이며 그러기에 감정은 예외 없이 모든 이유를 자신에서 확인하는 자기 이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나 외부 현상을 자기감정의 이유인 듯 자칫 잘못 알면 감정은 곤두박질을 치는 것이다.

만물이 다 하나이지만, 저마다 다르고 늘 바뀌는 것이라서 감정의 자기 이해를 지키는 한 만사형통이지만, 남 탓을 잘못하기 시작하면 착오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철두철미한 자기이해인 감정과학이 아니면, 아무리 학문이라면서 사물을 많이 파악하고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진실을 왜곡하게 되어 학문은 감정과는 멀어진다는 것이다.


《문화교차》, 전헌 외 9명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09/20160409001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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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6 일요일 오후 블로그 통계에서 마주쳤던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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