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7년부터 25년까지

뮤지컬 《다시, 동물원》

by LEESHOOP 리슙




올해 6월 처음으로 《다시, 동물원》이란 뮤지컬을 본 후로 지금까지 아홉 번을 봤습니다. 이따가 한 번 더 보면 딱 열 번을 채우겠네요. 90년대에 태어난 제가 왜 87년도에 결성된 가수 '동물원'과 '김광석' 주인공인 뮤지컬에 갑자기 꽂혔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아주 자신 있게 저리주저리 나열할 수 있니다.


이전까지는 포크 음악 속 통기타 소리가 들머릿속에는 바로 '7080 라이브 카페'의 네온사인이 깜빡였요. 저수지 옆에 자리한 카페의 어두컴컴한 실내, 맛없고 양 적던 음료 한 잔, 화려한 패턴의 천 소파, 기타를 맨 가수들의 흐느낌 비슷한 공연 연달아 떠올랐죠. 기게도 어쿠스틱 팝은 지만 그건 별로더라고요. 비슷한 연유로 트로트도 어했습니다. 처량하고 축축해서요.


그러다 인스타그램 광고로 평소 좋아하던 배우가 뮤지컬 《다시, 동물원》에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고 한 번 볼까라는 마음 예매하게 됐습니다.



오승윤 한승윤 박종민 오경주 류제윤 정욱진 장민수 김이담 정이운 박상준 석현준 홍은기 문남권 조훈 김성현

6월 29일 요일 낮 처음으로 공연을 보고 나오던 길과 마음이 여전히 기억나요. 일단 재밌었어요! 진짜 친구들끼리 스스럼없이 장난치며 노는 낌이었죠. 그렇게 랑하는 친구들 간의 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 갈등과 오해, 이별, 하고 싶었던 말과 하지 못한 말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물 흐르듯 전개됐습니다. 이래서 추억이 '중성미자'처럼 눈에도 안 보이고 무게도 없지만 존재하는 건 분명한가 봐요. 추억이 머금은 에너지, 감정 이야기가 되고 음악이 어 87년부터 25년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닿고 있으니까요.


공연장을 나오니 햇빛 아래 고루 구워진 땅처럼 응달졌던 기억 속 그림자도 어느새 개어 있었니다. 기분이 참 포근하고 산뜻어요.

모든 곡이 다 좋았는데, 그중에서 특히 《변해가네》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가 유독 맴돌았어요. 곧바로 멜론 플레이스트를 동물원의 노래로 채웠니다.


다음날 이어폰을 끼지 않아도 그들의 음악 계속 머릿속을 돌았어. 녁에는 가만히 앉아 음악만 들었니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요. 가사가 들렸고 든 곡 가사가 모두 시어요.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보단 너와 머물고만 싶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우 ~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 너무 빨리 변해가네


가수 동물원, 《변해가네》


전반부에서는 고립적인 화자의 짜증과 수동성이 느껴졌다면 후반부서는 화자의 변화 설렘, 기쁨이 전해졌어요. 그니까 '너를 알게 된 후' 생긴 이 변화라는 게 썩 싫지만은 않은, 사실은 너무 좋은 그런 속마음까지 그려졌죠. '그러나'를 기점으로 똑같은 멜로디 속 상황이 180도 뒤힐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다들 이렇게 몇 초의 구간도 어마어마한 함축을 숨겨놓나 봐요. 로운 과거와 설레는 미래를 동시에 품은 노래였습니다.



저는 때문에 일요일만 공연을 볼 수 있어. 그래서 게는 이제 딱 두 번의 공연만 남았답니다(*참고로 뮤지컬은 9월 14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하고 쭉 공연니다. 지금은 할인도 해주네요). 25년 여름의 앞뒤를 함께 살주고 가을의 입구걸어가 준 지컬 《다시, 동물원》. 시간을 잠시 멈추고 마음을 흘러가게 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9월에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로 한 번 더 인사를 전할게요.







*사진 촬영은 불가하며, 스페셜 커튼콜일 때만 가능합니다(위의 사진은 그때 촬영했습니다).


#뮤지컬다시동물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