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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HOOP 리슙 Aug 08. 2022

아침밥



2015년 12월 겨울 새벽 4시 반부터 캄캄한 알람이 울린다.

9시까지 출근하려면(정확히는 8시 50분까지 도착하려면) 늦어도 6시에는 버스를 타야 한다.

당시 출근 전 절차들은 이랬다.

1단계- 머리를 감고 화장하고 옷을 입는다. 총 45분 소요.

2단계- 가장 중요한 절차이다. 바로 아침밥 먹기. 양치질까지 포함해 약 25분 소요.


그전까지 나는 원래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는 타입이 아니었다. 학원이든 학교든 일터든 거진 다 서울이었고 막히기 전에 나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부담감이 매우 컸었다. 나갈 준비만 해도 빠듯했다. 그래서 차라리 30분 일찍 도착해서 아침을 먹는 게 여러모로 속이 편했다.


그랬던 내가 A라는 회사를 다녔던 한 달 반 동안은 집에서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나갔다. 거길 그만두고 나서 다시 예전의 습관(여유 있게 도착해서 일과 전 아침 식사)으로 돌아갔으니 출근 전 아침 식사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당시 내 자신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간절하게 '사람다움'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

그때의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강박은 어떻게든 살아야 된다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수저를 드는 행위를 통해 잠시나마 '살아있다'는 지만 강한 과 위로를  수 있던 것이다.




A라는 회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던 곳이었다. 익명으로 회사 리뷰들을 올리는 사이트 중에서도 특히 악명 높은 곳이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대표는 회의실에서 담배를 뻑뻑 펴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노동청에서는 매일같이 대표의 출석요구하는 전화 수십 통씩 다. 한 달 반 동안 13명의 직원들이 그만뒀다. 인원수를 기억하는 이유는 저 숫자 이후로 세기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아침에 입사해서 점심시간에 퇴사하는 람들 이야기는 안주는커녕 식거리차 못됐. 설립한 지 10년 안된 중소기업 입사자와 퇴사자 숫자는 중견기업 가히 견줄만했다. 새벽까지 폭음을 즐겨하던 대표 속이 안 은 날은 점심시 증발했다. 나머지 화수목금도 월요일 회의실과 다를바 없이 쌍욕과 고성이 오갔다. 사무실은  언제나 숨도 얼어붙을 것 같은 살얼음판이었다. 금방이라도 금이 갈 것처럼 모든 게 위태로웠다. 그러니 밥이 넘어갔으랴. 직원들끼리도 일 쳐내기 바쁘니 팀워크가 있을 리 만무했다. 나처럼 새로 들어온 직원은 짐짝일 뿐이었다. 눈칫밥만으로 가슴이 그득했다. 같은 공간에서 숨쉬기도 싫었고 먹기는 더 싫었다.


그래서 살려고, 나 아직 살아있다는 확신을 얻려고 먼길 떠나기 전 꾸역꾸역 아침을 먹다. 아침밥에는 지난 밤의 불확신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간단지만 꼬박꼬박 의식을 기울 먹는 아침 식사는 나답게 살기 위한 첫 번째 생존법이었다. 만약 아침밥을 굶고 회사에서 억지로 꾸역꾸역 식사를 먹었다면 나는 진즉에 사무실 책상 위로 쓰러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재도 나는 침밥 챙겨먹기 말고도 나답게 살기 위한  다른 생존실천 중이다. 바로  쓰는 일이다. 이번에는 사는 게 맞나 싶은 회의감이 아니라 살아서 맞다 싶은 감사함으로 하고 있.

불과 며칠 전 8월 5일 젖어있던 우울한 베개 고마운 이들 인해 깨끗이 돈됐다. 덕분에 자리가 산뜻졌고 새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옛 속담이 떠올랐다.

Bog zatvori jedna vrata, a otvori stotinu.
- OLD CROATIAN PROVERB

God closes one door and opens a hundred.
"하나의 문이 닫히면 백 개의 문이 열린다"


오늘이 딱 그랬다.

닫힌 문만 보고 못 나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또 다른 을 활짝 열어고 있었다.



ps. 생일을 쓰기마무리하는 건 살면서 처음 해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축의 의미로 스스로에게 글을  건 꽤나 멋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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