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다른 날짜, 다른 시간에 동일한 장소를 찍어 놓은 사진들은 내게 바다 위에 뜬 부표와도같다.
죽을 때까지 쭉 삶을 항해할 내게 소소하지만 가장 확실한 지표이다.
각각 2019/2021/2022
거센 태풍 속에서도 이 부표들은 있는 듯없는 듯 둥둥 떠다닌다.물론 이 표식들이 나를 완전히 돌아오게 할지는 알 수 없다. 당장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없다. 태풍 속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도, 보이지도 않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부표들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다. 언제까지나머릿속에,사진첩에머물러 있다.일상 속반복되는 모습이야말로삶의나침반이자 길을 알려주는 부표이다.
매번 사진을 찍지 않아도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부표를 인식한다.
그랗게 여러 날에 거쳐 반복되는 일상을 찍어 놓은 사진은볼 때마다 평범한 현재를 조금 더 소중히 여기게 한다. 비슷해도 분명 다른 모습들이, 지금 이 순간은 오직 한 번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하기 때문이다.
부표를 스쳐 지나가면서 힐끗 바라볼 때마다 가장 먼저안도감이 든다.
4년 전과 별 다를 바 없이건강하고 튼튼한 다리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으로 여겨져서다.뛰느라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기뻐하고 감사해한다.
그렇게라도 존재감을 확인해야안정감을 느끼는 연약한 인간이라 비난받을지라도 별 수 없다. 사람은 원래불완전하게 만들어져서 완전하다고 느끼는 건 뭐든지 추구하고 박제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에는"기억의 불멸을 꾀하느라 생생한 현재를 희생"하는 인간의 모습이 나온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사실 영원은 인류의 오랜 염원 아니겠는가.지금도 과거는 영원히 그때 그곳에서계속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단지 나만이 돌아가지 못할 뿐이다.
아직까지 불로장생약과 타임머신은 어려우니 적당히,현재를 희생하지 않을 정도로만 사진을 찍어 영원의 아주 조그만 조각이라도붙드는 건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찰나의영원들을 핸드폰 속에 넣고 다니면 어디서든과거로 쉽고 빠르게 다녀올 수 있다. 사진을 보며 과거를 잠시 유영하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행복했던 과거를 생생한 현재로 불러와 현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도 있다.예전 기억을 회상할 때 드는 행복한 감정들이 때론 과장되고 왜곡될 지라도, 이만큼 유쾌한 왜곡도 없을 것이다.
+ 발음만 같은 또 다른 <부표>에는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기 위하여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이란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