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거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SHOOP 리슙 Nov 28. 2022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 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 법정 스님



참, 마음 아파하면서는 글 쓰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별 수 없이 또 쓴다. 이래서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그런 얘길 하신 건가.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고는 결코 걸작이 나올 수 없다!'(그렇다고 이 글이 걸작인 것도 아니고, 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견줄 만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쓰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기억하기로 고2 음악 선생님은 흰 백발에 안경을 쓰고 배가 살짝 나 모습이었다. 혈기왕성한 여고에서 평정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지극히 점잖으셨다. 아마 얼굴에 어려있던 앳된 구석이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백발 정중한 태 조화 이루었.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을 티 안 나게 챙기던 그의 마음 씀씀이 질투보다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건 편애와 차별보다는 같은 길을 가려는 제자에 대한 지지와 안쓰러움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인간적인 호감이 느껴지던 선생님 중 한 분이셨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연주가 있다. 1988년 카라얀이 베를린 필 하모닉을 지휘하고 젊은 키신이 피아노를 쳤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연주 실황을 녹화한 영상을 우리에게 수시로 보여주는데  번도 지겹거나  적이 없었다. 매번 볼 때마다 감동었다. 지금도 교향곡이라고는 거의 알지 못하는 내가 유일(무이할 수밖에 없지만)하게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놓다. 첫 소절부터 덮쳐오는 뭉클함에 번 겨워진다.



1988, 마에스트로 카라얀과 피아니스트 키신 그리고 독일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지금도 그 시절의 선생님에 대한 추억과 피아노 협주곡은 여전히 좋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사랑'은 글쎄다. 그건 좋고 말고를 떠나서 불가사의하다. '진정한 사랑'이 대체 뭐지? 베르테르처럼 권총 자살까지 가야 하는 건가? 숱한 K- 드라마, C* 배급사 영화처럼 죽을 고비와 피 말리는 갈등과 복잡하고 산 넘어 산인 연애사를 지독하게 겪어야만 알게 되는 것인가?

18살의 감수성에 콕 박신탁과 같던 문장은 살다 보니 점차 샌드백으로 뒤바뀌었다. 을 쏟아냈관계에서 상처받을 때마다 죄 없는 문장을 두들겨 팼고 원망을 쏟아냈다. 3년 전 세 번째 이별에서도 그랬다. '역시 헛소리였네.' 사람이 미워 문장을 미워했다. 장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낸 나한테 죄가 있겠지. 다행히 망각의 동물답게 기억과 감 차츰차츰 옅어져 갔다. 나간 인연과 문장의 의미 무게를 잃고 점차 어져 갔.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고는 결코 걸작이 나올 수 없다!'. 제 내 귀에는 를 오랫동안 정박시켰던  낡은 문더 이상 들리지 는다. 피아노 협주곡 그때와 변함없이 리고 있 뿐이다.





리 위로 새로운 의미와 힘을 주는 문장들 계속 불어온. 한 번도 멈 적 없이 불어왔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말들이다. 어떤 문장들은 오래전에 심어져 있다가 느닷없이 불쑥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그중에는 위에 써놓은 법정 스님말도 있다.  글을 읽는 당신도 마음에서, 책에서, 일상 속 대화에서, 유투브에서, 브런치에서, 인스타그램에서 계속 바람을 맞았을 것이다.

우리는 바람 알아린다 그 바람을 타고, 그 말을 타고 얼마든지 새로운 항해를 떠날 수 있. 얼마든지 잊어버린 나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그러다 다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다. 죽을 때까지 바람은 계속 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바람을 타고 떠났다. 내일도 당연히 떠날 것이고 죽을 때까지 영원히 떠날 것이다.  앞으로는  스스로의 진심과 진실부터 귀하게 여기고 가꾸다가 진실한 사람에게만 제때에, 잠시라도 닻을 내리고 아낌없이 주고 싶다. 아부을 때제대로 쏟아부을 것이다. 그래야 미련 없이 다시 떠날 수 있을 테니까. 


배우 조달환 님의 문장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네가 아니라서 공감하는 중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