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생각한 대로 나오고 생각은 말하는 대로 심긴다. 들숨날숨처럼 서로 순환한다. 그러다 종종 어긋난다. 어긋난 말은 주로 무의식적으로튀어나오는 말이다.어긋난 말은 예기치 못한 파장을 일으키고 예기치 못한 것들을 파괴시킨다.분위기일 수도 있고, 기분일 수도 있고, 의지일 수도 있고, 그 외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손쉽게 조각내고 부수고 얼린다. 누군가에게는 기척도 주지 못하는미비한 스침이누군가에게는 피가 줄줄 배어 나올 정도의 깊은 상처가 된다.
상처를 낸 후 그냥 도망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사과하고 수습하려는 사람이 있다. 그중에는또 사과랍시고 이상한 말부터 건네는 이가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저 말은 바로 삼켜야 한다. 뱉었다가는 상처만 덧나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의도가 뭐였든, 결국 나의 의도를 잘못 전달한 사람도 나인데 누구한테 책임을 전가하겠는가?
'네가 잘못 받아들인 거야'.
이 말은 내 잘못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좀상하니너의 탓을 해서상황을 모면하겠다는 의미이다.나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상대는단지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받았냐고비난한다니.상대방을 헤아리지 않고 말을 준 사람, 그래서 상처를 준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
나도 물론 말해놓고 후회했던 경험들이 있다. 그때 일들을 다시 곰곰이 되짚어봤다.정말 내 의도와 다른 말이었을까? 음, 아니. 결단코 없었다. 애당초의도부터가 문제였다. 내마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한참 모자랐다.말하는 찰나의 순간에 갑자기 빙의되지 않고서는 내 잘못이 맞았다. 잘못된 의도로 잘못 말한 나의 실수였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 다르다. A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말이 B에게는 평생 박힐 압정이 될 수 있다. 그럼 사람 가려가면서 말해야 하나? 당연하다. 사람 가려가면서 말해야 한다. 가리리고자 마음 먹으면 최소한 한 번쯤은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기 때문이다. 더 쉽고 간편한 방법이 있다. 누굴 만나든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좋은 마음하나만 계속 가꾸는 것이다. 늘 유익한 말만 쏟아낼 필요도 없다. 그냥 보통의 말,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서 기억에 남지도 않는 말이면 된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순탄한마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개그우먼 장도연 님이 한 방송에서 종이 신문을 읽은 지 5년~6년 정도 되었다고 밝혔다. 배려하면서 방송하고 싶은 마음에, 적어도 무지로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자는 마음에 시작했다고 한다. 실수를 줄이고자 계속 배우는 그녀를 보니 한동안 잊고 있던 배려치가 다시 떠올랐다. 나 역시 그녀처럼 쭉쭉 늘릴 것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이 언어를 바꾸기도 하지만 언어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 영혼을 베는 말과 일으키는 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 유선경, <어른의 어휘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