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일본(4) - 21/08/2023,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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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여행을 가면 싸우는 일이 많다던데. 다행히 90%의 내 덕과 10%의 친구 덕으로(?) 우리는 몇 번의 여행동안 싸움 없이 무사히 관계를 유지 중이다. 친구가 무던하고 잘 받아주는 면이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여행에서 추구하는 바가 비슷하다.
우선 여행에서 식사의 중요성이 가장 높다. 숙소는 조금 안 좋더라도 만족하지만 배고픈 여행이라는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었다. 일본 미식의 도시 중 하나라는 후쿠오카에 1일 7끼를 목표로 자신 있게 발을 딛었지만 생각보다 타이트한 일정 탓에 1일 5끼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카페나 간식은 0.5끼로 계산했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기분이 아주 살짝 안 좋아진다는 것도 우리 둘의 공통점이었다. 타향살이 중에 들리는 한국어는 뭉클하게 다가오겠지만, 애초에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의 여행'을 꿈꿨던 우리였기에 현지인만 있을 것으로 생각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하게 한국인들을 만나면 뭐랄까, 맥이 좀 빠지는 듯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싫었다. 개인적으로. 후쿠오카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었다고 생각할 즈음 한국인을 만나면 '아, 지금 나는 잠시 여행 중이구나. 곧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구나'를 자각하게 되어 약간은 서글퍼졌다.
이런 우리에게 여행 첫째 날 밤은 소박하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메뉴판의 한국어는 엉망이지만 맛은 최고였던 야키니쿠집 <Bakatoaho Ekiminamiten>이 그 시작이었다. 구글 리뷰를 보면 한국인 손님이 꽤 찾는 듯한 식당이었지만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은 일본인들이 우리 양 옆을 채웠다. 종종 찾아오는 우리나라 관광객을 위해 사장님이 한국어 메뉴판을 만들어 놓은 듯했지만 대동맥(아마도 대창?)과 로즈장미(왠지 모르겠지만 시켜보니 삼겹살이었다), 그리고 비둘기 등등 엉터리 번역들이 우리로 하여금 피식하는 웃음이 나게 했다. 아직까지 '비둘기'는 무엇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설마 진짜 비둘기였을까?
저녁 식사 후 야식거리를 사러 마트에 가는 길, 우리는 잠시 <산노 공원>에 들렀다. 한눈에 봐도 건장한 운동쟁이들이 맨몸 운동을 하거나 러닝을 하는 동네 공원이었다. <오호리공원>처럼 관광지가 아니라 주택가에 있는 동네 공원이었지만 야구장을 하나 끼고 있을 만큼 규모가 있는 공원이었다.
공원 근처에는 <크로스핏 하카타>는 크로스핏 체육관이 있었는데, 컨테이너 격납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 같은 곳이었다. 체육관 안팎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주변 주민들이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그 체육관은 마치 우리가 여행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있는 듯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해외에서 기를 쓰고 한국인을 피해 다니는 것은 촌스러운 태도일지도 모른다. 발이 닿는 대로 가다 보면 일본에서 한국인을 만날 수도 있고 칠레 사람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여행 첫째 날 밤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한국어가 전혀 들리지 않았으며 그곳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현실을 떠나 아무 걱정 없이 걸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걱정을 모두 버리고 후쿠오카에 집중할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