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의 촘촘함

후쿠오카, 일본(2) - 21/08/2023 점심

by JUNE HOLIDAY


본문과 소제목에 제가 다녀온 장소들의 구글맵 링크를 연결해 두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하카타역


하카타역


후쿠오카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하카타역>은 '큐슈 지역의 현관문'이라고 불릴 만큼 매일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한큐 백화점, 아뮤 플라자, 썬플라자 등 각종 쇼핑몰과 음식점, 상점, 지하상가가 몰려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하카타역>은 한국으로 따지면 고속버스터미널과 비슷했지만 그 규모가 훨씬 컸다.


4시 호텔 체크인 전까지 짧게 <하카타역>을 구경하기로 한 우리는 아뮤 플라자 코인 라커에 짐을 맡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구경이 아니라 '방황'을 하게 되었다. 여러 쇼핑몰이 지하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면서 현재 위치를 찾기 바빴다. '고터에서 길 잃은 외국인을 보면 친절히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였다.


가뜩이나 오랜만의 해외여행으로 정신이 없었던 우리는 빽빽한 일본어 간판 탓에 더 어리바리해졌다. 가끔 일본어로 된 사이트에 접속하면 사이트 전체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일본어 글자 탓에 눈이 피곤해지곤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일본 사용자들은 이렇게 정보량이 많은 디자인을 선호한다고 한다. 쇼핑몰 곳곳에 다양한 일본어 폰트들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이 있는 간판이 꽤나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는 탓에 더 글자들이 촘촘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찾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었지만 길을 잃지 않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다. 결국 지하를 배회하다가 점심을 먹기로 한 <하카타 1번가>를 찾아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찾은 <카페 하치>도 원래 가려던 <REC Coffee>가 실내인 것을 뒤늦게 깨달은 후 더위를 피해 눈에 보이는 대로 부랴부랴 들어간 곳이었다.


촘촘하게 박혀 있는 일본어의 홍수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몇 시간 지나다 보니 그래도 적응하게 되었다. 'SHIRO'라는 향수 브랜드도 찾아갈 수 있었고 캐비닛도 무리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약간 헤매기는 했지만. 결국 '적응'의 문제였다. 여행이라고 해서 매 순간 처음 보는 것만 지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카타역>처럼 교통의 중심지 같은 경우 여행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들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장소를 지나다 보면 눈이 주변에 적응하게 되고 익숙해지게 된다. 마치 우리가 <하카타역>에서 점점 길을 잘 찾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익숙해질수록 편해지지만 긴장과 설렘은 줄어든다.


고등학교 때부터 드나들던 고터 지하상가는 나에게 설레는 장소가 아니다. 오랜만에 간다고 해서 긴장되지도 않는다. 물론 처음 고터 쇼핑몰에 들어갔을 때는 <하카타역>에 처음 찾아갔을 때처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고터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커다란 쇼핑몰에 적응하게 되었고 지금은 몇 달 만에 찾아가더라도 편안할 만큼 익숙해지게 되었다.


편안함은 삶에 있어 필수적이다. 긴장만 가득한 관계는 외줄을 타듯 위태롭다. 우리가 <하카타역>에 익숙해지지 못했다면 여행을 무사히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에서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숙소 외에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일종의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베이스캠프만 찾으면 집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은 긴장감 가득한 여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지금 내 삶에서 나에게 '베이스캠프' 같은 사람들에게 새삼스럽게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