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음악은 시간의 예술,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라고 한다. 나는 한때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을 꿈꿨을만큼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출퇴근 길에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산다. 내가 듣는 음악들은 아무리 길어도 한 곡이 6분을 넘지 않는다. 아침에 문을 나서며 재생버튼을 누르면 도착할 때까지 짧은 앨범 하나를 돌릴 수 있다. 가끔 플레이리스트를 셔플해 놨을 때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 같은 곡이 나올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이런 노래들을 처음 들으면 '뭐야? 다음 곡으로 넘어간게 아니었어?' 하고 놀라곤 한다. 나에게 있어 가요 한 곡은 4분 남짓이라는 인식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도 순수하게 음악 '감상'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처럼 출퇴근길에 핸드폰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도 많고 혹은 그림 작업이나 설거지를 할 때 음악을 듣기도 한다. 침대에 누운 다음 머리 맡에 자신이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들 음악을 틀어놓고 동시에 무언가 다른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을 들을 때 시간을 쓴다'고 의식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짧은 곡이라도 감상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만이 음악을 감상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현대카드 바이닐앤플라스틱'이다. 바이닐앤플라스틱은 한강진에 위치한 레코드샵이다. 다양한 LP들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유롭게 구경하거나 매장에 비치된 LP플레이어를 통해 청음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아날로그 음악을 대표하는 LP를 현대적인 공간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공간의 매력이다. 단순히 LP를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1,2층을 오가면서 찾고싶은 음반을 찾아내고, 흥미로운 표지의 LP를 골라 내 손으로 직접 틀어보는 등 바이닐앤플라스틱에서의 모든 경험은 음악적 체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이는 침대에 누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공간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다. 그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더라도 사람은 그 공간을 갈망할 것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온라인 공간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밥을 시키고, 사람을 만나고, 취미를 즐기는 일은 이제 식상할정도로 당연해졌다.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같은 목적으로 행동한다고 했을 때,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LP판에서 듣고 싶은 음악이 나오는 구간을 찾는 것보다 유튜브뮤직에서 바로 검색하는 것이 더 빠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온라인의 효율성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어떤 연구 결과나 논문을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경험이 사용자에게 주는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것일수록 더 그렇다. 매일 사용하는 배달앱의 UI가 편리하게 업데이트되었다고 해서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식당 테이블 한 켠에 손님이 머리를 묶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작은 고무줄 하나에 우리는 감동한다. 그리고 이 감동은 누군가로 하여금 다른 식당들보다 '그 식당'에 가도록 만드는 작은 이유가 된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사례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온라인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오프라인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다만 가끔씩 사람들의 관심이나 가치평가가 온라인에 치중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다만 인간이 말 그대로 완전히 오프라인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는 한, 위에서 말한 오프라인만의 특별한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