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세면대

by JUNE HOLIDAY

이번 주말 아침, 여의도의 한 대형 북카페를 찾았다. 서너 시간 분량의 공부를 해야 했는데 집에서는 도통 집중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명 파티시에의 이름을 딴 이 북카페는 책이 주는 안락함과 함께 고급스러움을 콘셉트로 삼고 있는 듯했다. 테이블의 배치, 직원들의 태도, 음료 및 베이커리의 맛과 심지어 ‘가격’까지. 편안하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화장실 세면대 또한 그러했는데, 평상시 상가 화장실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면대가 아니라 조금 더 클래식한 구조의 세면대가 있었다. 한 쪽은 따뜻한 물, 한 쪽은 차가운 물을 조절할 수 있는 밸브가 달려 있었다. 화장실 역시 고급스러웠다. 매끄러운 재질로 된 세면대와 어두운 톤의 바닥과 벽, 심지어 냄새도 나지 않고 은은한 방향제 향마저 느껴졌다. 한 가지 빼고 모든 것이 완벽한 화장실이었다. 바로 어느 수도꼭지를 돌려야 따뜻한 물이 나오는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색, 파란색 표시도 없었다. 세면대 자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없었던 나는 내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애쓸 수 밖에 없었다.


여의도 카페꼼마&얀쿠브레 세면대.jpg

‘우리 집 세면대는 어땠지?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 차가운 물이 나왔던가?’


나는 한 쪽 밸브를 힘껏 돌렸다가 화상을 입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오른쪽 밸브를 반쯤 돌리고 물 온도를 체크해봤다. 차가운 물이었다. 조금은 안심한 뒤 왼쪽 밸브를 또 반쯤 돌렸다. 조금 미지근해지긴 했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물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차가운 물에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와야 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 이 화장실은 카페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카페에서 분위기를 가장 중요시하는 손님이었다면 좀 차가운 물로 손을 씻게 되더라도 이 카페에 대한 평판이 낮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손을 안 씻고 말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페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나는 손을 잘 씻는 손님이었고 나를 혼란에 빠트린 세면대 덕분에 이 카페에 대한 평판이 아주 약간 깎이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손에 집히는 대로 세면대 밸브를 힘껏 돌렸다가 자칫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물론 가능한 가장 뜨거운 물을 틀었다고 해도 물 온도가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지 않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손님은 그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세면대를 보자마자 적당히 따뜻한 물을 틀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사용자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꽤 괜찮은 대안을 과거 한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롯폰기 아카데미 힐스 화장실 세면대.jpg


위 사진은 작가 생각노트의 <도쿄의 디테일>에 등장한 롯폰기 아카데미 힐스 화장실의 세면대 모습이다. 수도꼭지를 좌우로 돌리는 방식이 아니라 버튼 하나만으로 수온을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이다.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미온수, 또 한 번 누르면 그보다 약간 차가운 물이 나온다. 극단적으로 뜨겁거나 차가운 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가 불편을 겪을 필요가 없다. 저자 생각노트는 위 세면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도 제1사고 원칙(일반적인 상식이나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에 다가가 생각해보는 사고법)이 적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수와 온수라는 극단적인 온도 차를 극과 극의 방향으로 표시하는 방법에 적응하다 보니 새로운 형태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냉수와 온수를 교체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면 여러 형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힐스에 있는 버튼식 세면대처럼 말이죠.”


이 세면대처럼 사용자를 먼저 생각한 디테일을 만났을 때 사용자는 감동한다. 그 제품 혹은 서비스에 새로움을 느끼고 심지어 작은 디테일 때문에 그와 관련된 모든 것(나의 경우 북카페 그 자체)에 대한 호감이 상승할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이 커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 둘 디테일을 무시하다 보면 겉만 번지르르한 상품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용자는 겉만 번지르르한 상품과 하나부터 열까지 사용자를 고려한 상품을 분명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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