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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Jul 05. 2023

'진짜' 내 생각은 없다

04/07/2023

모든 레퍼런스의 차단

빈지노 노비츠키 들으면서 든 생각

like a fool

불편한 댓글

댓글 그 자체

진짜 내것은 얼마나 있는가

댓글을 숨기고싶다

은행 어플은 첫화면에 잔고가 나온다 하지만 숨길수도 있다



 한국의 전설적인 밴드 부활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김태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하게 될까봐 평소에 어떤 음악도 듣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음악이 무의식에 각인되고 작곡 과정에서 그 음악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밝혔다. 모든 창작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창성이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집착은 예술가들의 대표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표절이라는 것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의 경우 멜로디가 한 두 마디 비슷하거나 코드 진행이 비슷한 정도로 대중에게 표절작으로 의심 받는 경우가 많지만 그 모든 표절의심작들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만든 사람 본인만 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고 표절 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당사자들은 오마주, 패러디, 머니코드, 혹은 장르의 유사성 등을 내세우며 해명하는 창작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많은 창작물이 나오면 나올수록 표절 시비의 그물망에서 쏙 빠져 나가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됐거나 창작자로서 김태원의 위와 같은 태도는 존경받을만 하다. 의도한 표절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조차, 어쩌면 인간의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는 영역까지도 경계하려는 그의 예술가적 마인드에는 '숭고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의식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예술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난 유튜브 댓글창을 볼 때 특히 이런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통계에 의하면 일반 영상이든 쇼츠든 간에 1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린 영상에는 '여론'이 형성된다. 특히 영상에 나오는 특정 인물에 대한 비방의 경우 여론은 더 빠르고 단단하게 형성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메인 콘텐츠보다 댓글을 먼저 읽는 요즘 사람들의 경향과 맞물려 시너지를 일으킨다. 영상을 보기 전에 부정적인 댓글들부터 접한 사람들은 필터가 생성된 채로 영상을 보게 될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댓글창에서 'OO은 이 프로그램에 안어울린다', 'OO은 여기서도 역시 싼티난다'와 같은 댓글을 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OO의 안좋은 점에 초점을 맞추고 영상을 보게 된다. 사람들의 소모적인 댓글이 내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이런 경험은 더 늘어났다. 나도 모르게 댓글창에 들어가면 넘쳐나는 댓글들에 내 주관이 형성되기도 전에 오염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나쁜 댓글은 물론 내 기준보다 과하게 긍정적인 댓글들을 봤을 때도 이런 경험이 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댓글창을 누르지 않도록 댓글창을 숨기거나 잠그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런 기능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손에 꼽을까 말까 할 정도로 적다. 오롯이 영상'만' 보고 싶을 때도 눈에 걸리는 댓글들이 발을 걸기 일쑤다. 2023년의 인류는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의 콘텐츠와 연결될 수 있음과 동시에 원하지 않은 정보에도 노출되었다. 


 '댓글창 숨기기' 기능을 윤리적 디자인의 틀 안에 넣기에는 좀 거창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용자의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능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보기 싫은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몇몇 은행 어플에서는 사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은행 어플을 켜면 첫 화면에 통장 잔고가 보인다. 체크카드를 주로 쓰는 사람의 경우 출금 통장 잔고를 첫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잔고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옆에 있던 사람에게 자신의 초라한 잔고를 들키게 되거나 혹은 줄어든 수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의 경우 잔고를 보고 싶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은행 어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잔고 숨기기' 기능을 제공한다. 터치 한 번이면 계좌의 잔고가 표시되지 않는다. 잔고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개별 계좌를 선택해야 한다. 한눈에 잔고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디폴트로 놓고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를 숨기는 기능도 제공하는 것이다. 


 댓글창의 순기능은 확실히 존재한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고 토론할 수있으며 필요한 경우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럴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많은 댓글 정보를 생성하게 되었고 정보의 과다는 우리를 피로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정보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산다. 이런 세상에서 '진짜'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댓글창을 숨기는 것은 정보의 폭풍이 부는 현대 사회에서 작은 우산을 피는 것만큼 미비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과 '효과는 적지만 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앞으로 많은 서비스들이 사용자들의 진정한 선택권을 위해 힘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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