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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Sep 29. 2015

여주인공의 단골 신분! 비정규직에 관한 혼잣말

을 이라도 감사합니다. 전 병(신) 쯤 될까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단골 신분인 '지잡대'(실제 대사에 등장한 단어) 출신의 인턴과 비정규직-계약직들.

내가 이 세상에 나만 비정규직인 것 같다가도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인가, 싶을 때가 두 가지 있는데

드라마를 볼 때랑, 대통령 선거할 때.

그때만큼은 비정규직이 주인공이고 계약직이 주인공이니까.


계약직 그녀들이 회사에서 벌이는 많은 일(이라고 쓰고 사고라고 읽는다)

코믹한 장면들이 많았음에도 그들의 이야기엔 한 번도 웃을 수가 없었다.


제가 계약직이라서요, 입장이 좀  그래서... 꼭 해야 하거든요,

하는 대사를 치는, 뱅뱅 안경을 쓴 어리버리한 여직원의 모습에도 한 조각도 웃기지가 않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커피를 타다 바치고, 잡무를 도맡으며 하루아침에 부서가 바뀐 것을 통보받아도 버텨야지 버텨야지 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나 같아서.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러한 일들은 실제에서 더하면 더하지 절대 과장이 아니다.

내가 삼 개월짜리 파리 목숨임을 모든 직원이 알고 있고,  '살아남아보라'는 말을 덕담처럼 내뱉는 사람들. 실제로 "계약 연장하려면 나한테 어필해봐, 나한테 잘 보여야  해"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으니.

(돌이켜봐도 어이가 없는 부분. 내가 회사 아니면 너 정도 남자랑 섞여 술 마실 일 절대 없어요 미친놈아)


흔히 회사가 갑이고 사원은 을이라고 들 하지만 계약직은 을도 아닌 병(신) 정도 된다. 모든 회사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회사들 중에는 그런 회사가 있었다.

가슴 아픈 병들의 행진을 지켜보면서도 내가 드라마를 계속 보는 이유는 드라마 속 어리버리 여직원 옆엔 멋진 고딩 상사도 있고, 때론 미스김도 있고, 오 과장님도 있고, 첫사랑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속상하니까 모르는 척 해달라면 차도 태워주고 집까지 데려다 준다. 다친 무릎도 치료해 주고. 하지만 현실은 정말 속상할 때 아무도 안 만나고, 37번 버스 타고 집에 간다.

내 현실이 그래서 난 웃지도 못하면서 드라마를 본다. 나한텐 그게 비현실이고 그게 판타지라서. 내 인생은 매 순간 판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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