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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Nov 05. 2015

나는 답답할 정도로 '태도만' 모범생이었다.

구질구질의 한 가운데, 늦깎이 취업 준비생의 혼잣말


나는 항상, 답답할 정도로 태도만, 과정만 모범생이었다. 미술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 시절, 실습실의 불은 내가 켰고 또 내가 껐으며 보조강사에게 과외비까지 쥐어주어 가며 밤새 그림을 그렸다.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말했다

"너 같은 애가 대학을 가야 하는데.  너처럼 열심히 하는 애가 없는데......"

(말줄임표의 의미는 참 슬프다)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야속하게도 나의 자리는 항상 예비 1번, 거기였다.

국가시험에서도 1점이 모자라 떨어졌고, 하다못해 놀이동산의 대기줄까지도 내 앞에서 끊어지곤 했다.  

한 끗이 모자라 성취할 수 없는 삶.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답답한 모범생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차선을 택했다.

비록 최선과 차선의 차이가 너무 멀어서 가고 싶었던 그 곳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지만 온전히 놓아버릴 용기는 나에겐 없었으니까, 항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인 '차선의 삶'을 택했다.

그렇게 졸업한 연극 관련 전공. 졸업작품을 준비할 쯤이었다. 눈이 병신이라, 더는 무대조명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마흔 되기 전에 장님 된다고. 의사는 죽는 것 아니라며 퍽 담담한 얼굴로 내 꿈의 끝을 선언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종이비행기 접듯 꿈을 접었다.


하루 아침에 꿈을 접고 나니


정말

아무런

목표가


아니, 목표가 없어졌다.

더 이상 무대를 분석할 필요가 없었고 드라마를 대사와 함께 고민하듯 보지 않아도 되었다.

일출과 일몰의 묘한 색변화를 감상할 필요도 없었고, 하늘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다.


내게 휴일은 월요일이 아닌 주말이 되었고,

검은 옷에 운동화가 아닌 흰 원피스와 구두를 신어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잠을 많이 자도 피곤했고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고팠고 누구를 만나도 외로웠다. 꿈을 꾸며 반짝반짝하는 친구들이 미웠다.


그때부터, 달리기를 했다.

저질 체력에 짧은 팔다리,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는 저질 몸뚱이었지만 계속 달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왜 달리는 지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순간순간에 목표가 생기는 것이 좋았고 골인했다고 주는 메달이 좋았던 것 같다.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달리기를 했고, 그저 그런 직장에서 누구에게 펼쳐보이기 낯 뜨거울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월급만큼의 일을 했다.

그것이 기어코 전공까지 마친 연극을 그만둔 뒤 내 삶이었다. 그저 그런 '보통날' 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보통날들에 지쳐가던 어느 날, 연극을 그만둔 뒤 처음으로 '일해보고 싶은' 직장이 생겨 뒷일은 생각지 않고 무작정 붙잡았다. 나름 나는 그게 인생의 반전이 되어줄 줄 알았지, 반전이 아닌 함정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테마파크는 흥미로운 직장이었다. 유쾌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즐거운 근무환경. 하지만 제 버릇이 어디 가질 않아 늘 나는 답답한 모범생 습성을 발휘했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나의 위치는 "애는 참 좋고, 참 열심히 하는데 답답" 한 사람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그게 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에선 그게 죄보다 더 나쁘다.


가족이고, 취미고 사생활이고 모두 포기하고 술자리에서 뺨까지 맞아가며 비굴하게 일했지만 결말은 온갖 이유를 다 댄 해고 통보였다. (그때 놓쳐버린 음악 친구들은 지금도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난 글을 잘 읽었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볼 줄 아는 생존형 애어른이었다.

세 번의 수능, 특별히 노력하여 공부를 하지 않아도 언어영역은 한 문제 이상 틀리는 법이 없곤 했으니 나름 특화된(?) 눈치 기술자라고 할 수 있겠다.


"더 이상 여자 막내는 필요  없다."는 팀장님의 대사에서 연극을 공부하며 몇 번이나 대본을 썼던 내가, 본능적으로 눈치 보는 것에 익숙한 내가 행간에 숨은 속뜻을 읽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사실 팀장님의 대사들은 좀 더 짧았으면 좋았을  뻔했지. 지금도 생각한다. 그 대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가 참 비겁했다. 하기 힘든 말일수록, 정직하고 심플해야 한다. 심플이고 뭐고 결론적으로 난 3개월동안 종량제 쓰레기봉투처럼 이용되었고, 유효기간이 지나기 전에 폐기되었다. 개장시간이 지난 테마파크의 쓰레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타인이 내게 비겁했든 그렇지 않았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억지로 흘러가던 내 인생의 대본에서 꽤 비중있던 하나의 막이 내렸고, 너무도 겁내서 선택하지 못했던, 인생의 인터미션이 찾아왔다.


4개월의 시간 동안, 인생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처음이라고 느낄 정도로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가 만족스럽지 않아 침대에 누워도 잠을 자지 못하고, 죄책감에 가득한 귀가길을 매일 경험한다.

스물일곱의 끝자락, 나의 오늘은 아침이 달갑지 않았다. 아마도 잠들지 못한 오늘 밤을 지나 내일 아침 역시 그러하겠지.


아침이 기다려지는 삶을 아마도 누가 찾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찾아야만 하겠지.

다행인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답답한 나답게, 내가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는 거.


인터미션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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