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지 못해 미안해
올해는 유난히 이별을 '통보' 받는 해이다.
인터넷 용어처럼,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같은 상황들.
이미 본인이 답을 정해 놓고선, 내 대답으로 관계의 끝을 맺길 요구한다.
그건 합의가 아닌 통보다. 일방적 계약 파기이고, 을은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공정 계약해지이다.
일 한 번, 사랑 한 번. 올해 내가 통보받은 두 번의 이별이 유난히 마음아 팠던 건
(그 외 쓰레기 같은 이별들은 세지 않는 걸로!^^)
내가 불쌍할 정도로 그 회사에,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떠난 그들이 나 없이 너무도 잘 지내 보여서.
찌질하지만 난 그들이 좀 근근이 먹고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날 떠나간 사람/직장의 승승장구 따위 빌어주는 '그런 천사표' 가 아니다.
인정한다. 난 쿨하지 못하다. 미안하지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이별의 말을 전할 때에는 심플해야 한다.
네가 입으로 상처 주려는 그 사람은 병신이 아니거든.
돌려 말한다고 상처받지 않는 게 아니라 그저 주절주절 핑계 대는 네가 더 짜증 날 뿐이니까
심플하게.
더 이상 네가 필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올해 내가 받은 통보들은 다 구질구질했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었다. 그냥 꺼지시지. 짜증 나니까.
(토익이 950점에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으면 뭘 하니, 전화기 뒤에 숨어 이별을 통보하는 너는 참 비겁하고 찌질했다. 근근이 먹고살아라 제발. + 슬픈 것은 그런 너 따위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나.)
마음 아프지만 세상은 내 마음 아픈 것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세상이 쿨해서 너무 춥고 +돈도 없어 서러운데 아무도 내 마음 따위 돌아봐 주지 않는다면 빨리 이겨내야만 한다.
너와 들었던 노래를 듣고 마음 아파해 봐야 내 손해고,
내가 속상하다고 술을 퍼먹고 길에다 토해봐야 내가 쪽팔릴 뿐이다.
인정해야 한다.
그냥, 너는 딱 그만큼만 날 좋아했던 거다.
나의 이별은 내가 누군가에게 내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당첨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복권처럼
길거리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된 가짜 선물처럼
반짝반짝해서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이 가짜였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엄마 말보다 음악을 잔뜩 들었기 때문인지, 많이 울었기 때문인지
항상 싼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다.
안 줄 거면 아예 처음부터 주지 말던가, 잔뜩 기대하게 해 놓고 결국 '줬다 뺏어' 실망시키는
싼타할아버지-혹은 저 위의 그분이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하다.
아니면 누구 말마따나, 내가 뒤집는 패가 그냥 전부 나쁜 패였는지도 모르겠는데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니까. 그냥 싼타할아버지 탓이라고 하고 싶다.
나는 쿨하지 못하다. 그래서 가는 너의 뒷모습에 꽃을 뿌려줄 수는 없다.
하지만
네가 가시밭길을 걷든 꽃 길을 걷든
나는,
곧
괜찮아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