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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Mar 05. 2016

노래 하나, 이야기 하나 - 1. 배치기,현관을 열면

예비 1번, 나의 첫 '실패' 의 노래.

노래를 들으면 때론 그 노래와 어울리는 누군가가 생각나고, 지난 순간이 떠오르기도 한다.

노래에 얽힌 기억들을 하나하나 써 보려고 한다.


노래 이야기 첫번째, 배치기의 현관을 열면


정말 가고싶은 대학이 있었다.

1차 추가합격발표결과 예비 1번이라는 예비번호를 받고 그 이후 14차까지 이어진 추가합격 발표. 이틀 걸러 한 번씩 입학사이트를 조회해봤지만 예비1번이라는 번호는 변함이 없었다.

불합격. 엄청나게 마음아픈 일이었지만 불합격 사실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정말 부모님, 특히 엄마를 볼 면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수백만원의 미술 입시비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사치스럽게 써댄 재료비에 온갖 악에 받쳐 내지르는 짜증까지. 착하고 순한 우리 엄마는, 온 우주가 가족으로 이루어진 엄마는 하루하루 걱정때문에 나보다 더 너덜너덜해졌었을거다. 그렇게 싸가지없이 굴었다면 합격했었어야 하는데. 온갖 잘난척을 다 해댔으니 마지막까지 잘났어야 했는데.

고등학교 졸업식도 끝나고 매일을 예비 1번에서 멈춰버린 대기번호 화면만 수십 수백 번 조회해보던 그 때. 똑같은 화면을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여러 번 조회해 보면 간절한걸 알고 혹시 붙여주지 않을까. 많이도 아니고 딱 번호 하나만 땡겨주면 나도 이 학교 다닐 수 있는데. 합격자 애들한테 찾아다니며 빌어볼까. 돈 달라고 할까. 얼마나 주면 나 이 학교 다닐 수 있을까. 영혼이라도 팔면 나 이 학교 합격시켜 줄까. 산다는 사람 있으면 뭐라도 팔고 싶다. 머릿속엔 그런 정신나간 생각들만 가득 차 있었다.


예배시간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혹시나 추가합격 전화가 올까 최대 음량으로 설정한 벨소리가 울리는 전화기를 들고  다녔다.

갓 스무살이 된, 나약하고 의지도 강하지 못한 여자아이가 견디기엔 참 힘든 시간들이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버거웠고 내가 믿던 종교를 원망했다. 그림을 그리고 논술을 썼던 손가락을 뽑아버리고 싶었고 내 존재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땐 보통 그러니까. 대학 입시가 전부였던 스무 살이었으니까.
사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가 악물어지는걸 보면 그때의 나에게는 꽤 혹독한 일이었음은 확실하다.

14차의 추가합격 발표가 모두 끝난 뒤 집에 돌아온 날을 기억한다. 동일한 전공의 전문대에 합격한 화면을 모니터에 띄운 채 담담한 얼굴로 엄마에게 말했다. 나 합격했어, 수석이래, 장학금도 준대. 엄마도 정말 담담하게, 응 그래 축하한다, 하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날 저녁 반찬은 어떤 때보다도 신경쓴 티가 났다. 축하하는 밥은 어느 것을 먹어도 맛있지만 위로의 밥은 그렇지 않다.
내가 먹은 그날의 밥은 위로의 밥이었다.

뻑뻑하게 숟가락에 밥을 뭉쳐 목이 막히도록 넘겼던 기억이 난다. 목이 막혀 찔끔 맺힌 눈물, 감히 슬퍼할 자격도 없었던 못난 자식이었던 나는 그렇게 밥을 욱여넣으며 찔끔찔끔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배치기, 현관을 열면.

유난히 반찬이 많던 그날의 저녁 밥상위에 가지런히 놓인 수저를 들고 밥을 넘긴 순간
기어이 눈물은 터졌어 애써 외면 하시다
참고 참으셨던 엄마의 눈물 마저 흘러내렸어

이미 모든걸 알고 계셨음에 숨기고 숨긴 아들의
시련 위로 떨어진 엄마의 눈물 앞에 나는
엄마 가슴을 자식복으로 채워 드린다는 굳게 했던
맹세의 나는 왜이리 초라하기만 할까


그 때 이후,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플레이 리스트에서 이 노래를 뺀 적이 없다.착한 엄마의 얼굴이, 그때 엄마가 차려준 그 가득한 저녁 식탁이, 목이 미어지도록 넘겼던 그 밥이 생각나서 이 노래를 삭제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 초라하다. 당연히 노래가사처럼 엄마 가슴을 자식복으로 채워드리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각오를 다진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그렇게 초라해지지 않으려고
내 앞에서 문닫고들어간 그새끼들보단 내가 잘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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