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환자 가족no.3이 쓰는, 가족한테도 하지 못한 마음 속 이야기.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사실 이러한 '멘탈 붕괴' 상태는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도움될 것은 없다. 하지만 연약한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정신을 단디 차리고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도 모자랄 판, 사다 놓은 암 서적들을 내팽겨치곤 평상시처럼 살았다. 그러기를 며칠. 조직검사를 위해 엄마는 입원했고, 하루 휴가를 내고 검사하는 엄마를 따라다녔다.
환자분의 보호자.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 뿐.
엄마가 조직검사를 하러 들어간 차가운 병원의 복도, 얄팍한 마음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나 이렇게 자존심 내버리고 기도할게요 하나님. 제발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으니까 자존심이라도 버릴게요 하나님. 하나님이랑 거래하는 거 아니라고 배웠는데 제가 지금 뭐라도 드리면 하나님이 나 불쌍해서라도 엄마 살려줄거같으니까 그냥 하나님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그런 싸구려같은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조직검사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암환자로 행정처리되었다. 엄마도 나도, 어느 정도는 결과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애써 눈길을 돌렸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있다. 엄마가 내 곁에 없다는 것.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최악의 상황. 결말이 뭔지 전혀 알고싶지 않은 책이 눈앞에 펼쳐질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