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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Sep 17. 2015

일회용 우산, 그리고 교통사고

안전거리를 유지한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생긴 못된 습관이 하나 있다. 사람을 대할 때 깊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부딪히면 아프니까, 뒤에서 빨리 오면 그만큼 앞서 달려가고, 천천히 오면 그만큼 기다리고. 언젠가부터 내겐 마음속의 안전거리 유지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나름대로의 자기보호 수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짧지만은 않은 내 삶에서 마음의 접촉사고는 생길지언정 대형 사고로 폐차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열 개가 넘게 쌓여버린 일회용 우산들 중 하나를 골라잡아 들고 나오며 문득
나는 내 마음을 잃어버려도 괜찮은, 일회용 우산처럼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널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내 마음은 이 정도로 그냥 가볍다고 싸구려라서, 잃어버려도 괜찮다고.
그냥 당장 필요했을 뿐이지 넌 나한테 소중하지 않다고, 난 이런 거 집에 열 개는 있다고.

하지만 내가 안전거리를 유지해도 교통사고가 나듯이. 겉으로 아무리 반짝반짝 괜찮은 척 대비를 해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의 솔직한 이야기를 나 자신은 안다.


기를 쓰고 싸구려라고 너따위 나한테 별거 아니라고 아니라고 방어했지만 사실은 난 비닐 우산을 잃어버린 게 정말 속상했다는 뭐 그런 찌질찌질한 혼자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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