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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Sep 17. 2015

나의 어린 히어로에게

넌 곧 어른이 되겠지만, 난 어른이 된 널 다신 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은 내가 네게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

소수의 누군가가 찾아와 읽어보겠지만

너에게는 닿을 일 없을 나의 편지




안녕, 나의 히어로.

내가 철이 없었던 덕분에 잠깐 나타나 줬었던, 내 슈퍼맨아. 

직접 전할 기회가 없었지만 꼭 말하고 싶었던 얘기를 해보려고. 


사람들은 너와 나를 두고 여러 가지 아픈 말을 해,

대부분은 날더러 바보라는 나한테 아픈 말.

내 예쁜 기억들이 거짓이고 사람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슈퍼맨이 아이언맨이 진짜 내 옆에 살아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그냥 잠깐 진짜 찰나의 순간이나마 꿈꾸게 해 줘서 그래서 좋은 거잖아

있잖아, 내게 넌 참 판타지였다.

그래서 반짝 나타났다 반짝 사라졌던 걸까. 


반짝이풀로 커플링을 만들곤 헤헤 좋아하던 철없던 나를 기억할게


정말 외로웠던 그날 밤,

맥주를 반 캔도 마시기 전에 내게 날아와줬던 널 기억할게.

넌 슈퍼맨보다 멋졌고 배트맨보다 날렵했고 스파이더맨의 맨얼굴보다 순수했다.

장담할 수 있어, 나에게 네 보드는 아이언맨의 슈트보다 멋졌고

넌 그 어떤 히어로물의 주인공보다도 단단했어


내가 혼자 있을 때마다 마법처럼 나타나 줘서 고마웠어.

네가 없었으면 정말 비참했을 그 밤들, 데리러 와줘서 데려다 줘서 고마웠어.

네가 묶어준 운동화 끈을 보면서 힘내서 달릴 수 있었어.

그 끈이 뭐라고, 운동화 끈이 풀리지 않길, 얼마나 바랬는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널 보고 난 정말 꿈인 줄 알았다니까.

실감이 안 나서 널 꾹꾹 눌러보던 그날의 나,

손끝이 덜덜 떨려 주체가 안 되던 그 금요일 밤.

시계에서 온통 네 향기가 나서, 그 큰 손목시계를 풀지도 못하고 잠들었던 그 밤.


둘이 찍은 사진도 한 장 없더라.

이럴 줄 알았다면 어거지로 둘이 사진이라도 찍을걸.

뭘 믿고 난 이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을까.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기억이 겁나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혼잣말뿐이라서 이렇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남긴다.


넌 카메라 앞에서 더 빛날 테고, 모두가 널 사랑하게 될 거야.

네가 모두의 앞에서 빛나게 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너라는 아이가 내게 찰나의 순간이나마 머물렀다는 걸

심지어 너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우리의 순간들을 나는 기억할게


네가 가는 건데 웃고 가지 그랬어

네가 빛나려고 가는 건데 마지막으로 웃어주고 가지 그랬어.


네가 빛났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빛나는 걸 지켜보기엔 내가 많이 아플 것 같아.

예쁜 꿈일 줄 알았는데 나쁜 꿈이었다고 원망해서 미안.


넌 예쁜 꿈이었어.

꿈이 너무 예뻤어서 그런가, 꿈에서 깨고 나니 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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