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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몽 Oct 16. 2023

첫 손님이 다녀가다.

제주집에 드디어 첫 손님이 오다.

첫 손님이 다녀가다.


 원래는 설렁설렁 마무리를 해볼까 해서 제주행 비행기를 탄 건데, 확실하게 할 일과 데드라인이 생겨버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렌터카를 몰고 다시 서쪽 고산리로 가는 길이 몹시 흥분되었다.

 고산리 마을에 들러, 자축하는 의미에서 양념치킨도 하나 포장했다.



 제주집 예약이 드디어 들어왔다!

 입금도 되었다!

 


 몇 달 동안 계속 돈을 쓰고만 다녔는데, 마침내 첫 번째 매출이 발생한 것이다.

 옛날에 받았던 월급이나, 본업에서 나오는 사업소득 외의 첫 수입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재료를 끌어다 내가 생각한 걸 얼기설기 조립했더니 그게 드디어 돈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늘 나는 나에 대해서

'머릿속 꽃밭', '현실 감각 없는 사람', '생활능력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는데,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첫 발을 띄울 수가 있었다.

 앞으로 조금 더 내가 바라는 망상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계속 좀 더 꿈꿔봐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오기로 한 손님은 젊은 남자 1명이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이직하는 타이밍에 시간이 나서 급하게 알아보고 우리 집을 고른 것이었다.

 한 달까지는 아니고 열흘 정도 예약이었다.


 혼자 열흘, 조용하게 쉬기에는 정말 우리 집이 딱인데.. 생각이 통한 느낌이었다.


집이 비어 있는 동안 제주집에 와있던 소설가 사촌동생과 밤에 기쁘게 치킨을 나눠먹고,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으로 손님맞이 대청소에 돌입했다. 모든 물건은 다 사두었기 때문에 제자리에 예쁘게 정리만 해두면 됐고, 창틀을 열심히 닦았다.




 손님이 찾아와서 문을 열고 들어와 집 안을 둘러보고,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며칠 지내는 모습을 하나하나 상상해 보았다.  

 

'처음엔 주소를 보고 집 앞까지 오겠지'

'그다음엔 내가 미리 보내준 "셀프체크인" 사진을 보면서 대문 장대를 끌어내고'

'마당의 창고 자물쇠 비번을 눌러 캡스 열쇠를 찾고'

'그 열쇠로 현관문 경비 해제를 하고 집에 들어오겠지'


'혹시 이거 하기 어려워서 나한테 전화할 수도 있으니 체크인하는 시간 즈음에는 휴대전화 잘 보고 있어야겠다.'


집에 딱 들어오자마자 받는 인상이 좋았으면 해서, 물건들 각을 맞추고 머리카락 제거에 특히 힘썼다.

돌돌이도 열심히 굴려가며 깨끗하게 빨아온 이불을 정리했다.


 맨날 컴퓨터 보고 문서 읽는 일만 하다가, 덩치 큰 이불에 엎드려 한참 돌돌이를 굴리고 이불청을 묶고, 개고 하다 보면 진이 빠진다.


 그런데 묘하게도 몸이 지칠수록 '나는 이렇게 먹고살 거야. 우리 애들 끝까지 먹여 살릴 거야.' 하는 삶에 대한 투지가 솟아오른다. 직접적인 노동의 힘인 것일까. 몸을 직접 움직일 때 전투력도 함께 생성되는 것일까. 컴퓨터 작업할 때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마무리까지 끝내고 집 안 사진을 두루두루 찍고, 빠트린 것 없이 문단속을 하고 나왔다.


자, 이제 손님은 내일 들어온다!




 손님은 미리 약속했던 시간에 정말로 왔다.

 셀프체크인 안내대로 정확하게 문을 열고 경비를 해제하고 집에 들어와서 예의 바르게 "잘 들어왔다"라고 문자도 보내왔다.


(이후로도 조금 복잡할 수도 있는 셀프체크인을 못해서 연락온 팀은 한 팀도 없었다. 다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와서인지 가르쳐준 대로 아주 열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휴우...

 서울에서 마음 졸이고 있던 나는 드디어 긴장이 탁 풀렸다.


 첫 손님은 아무 연락 없이 열흘간 있다가 그대로 문단속을 잘하고 나갔다.


 나가면서 "잘 쉬다 갑니다"라고 문자를 또 보내주었다.


 나는 다시 제주도로 내려갔다.



청소의 즐거움


 제주집을 통해 처음으로 번 돈으로, 비행기표도 사고 렌터카도 예약하니 공짜로 놀러 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본업은 100% 나의 손으로 하나하나 일해야만 돈이 벌리는 구조였는데, 제주집은 왠지 열흘간 집이 스스로 돈을 벌어다 주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손님 방문 전 후로 내가 직접 가서 청소하는 것이 보통 노동이 아닌데도, 마음이 즐거우니 그것이 노동이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 사이에 또 문의가 들어와서, 다음번 예약도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숙박업을 하면 가장 힘든 것이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하는 것이라던데, 과연 집 상태가 괜찮을지 내려가는 내내 걱정이 되었다.


오후 해가 다 떨어질 무렵 겨우 집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자, 놀랍게도 집은 내가 처음에 청소하고 나간 거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쓰레기는 거의 다 버려지고 없었고, 설거지도 되어 있고, 이불까지 모두 개어진 상태였다. 집 전체에 먼지만 좀 쌓여있고, 화장실 청소가 필요한 정도였다.

 집 깨끗하게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문자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시간을 달려온 터라 집이 엉망이었으면 너무 지쳤을 것 같은데, 상태가 괜찮아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선 이불만 꺼내 모아 빨래방으로 갔다.


 이후의 청소 루틴은 이것이다.

 이불 빨래 > 화장실 청소 > 바닥 청소 > 창틀 청소 > 머리카락 제거 > 마당 잡초 뽑기 > 쓰레기 버리기 >걸레질과 마무리 정리


왕복 여정으로 몸이 지쳐 있고, 이불빨래도 왔다 갔다 다 하고 오면 3~4시간이 걸려서, 쉬엄쉬엄 해도 하루 정도는 걸렸다. 작은 집인데 생각보다 청소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멋 모르고 집청소 수준 정도만 생각하고 '3,4시간이면 다하겠지~' 싶어 막 당일치기 일정으로 아침에 갔다 청소하고 밤에 온 적도 있다. 그땐 정말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 놔버리고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피곤하고 그 피로가 일주일이 지나도 안 풀렸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최소한 1박 2일 일정을 잡아서 청소하고 올라온다.




 예약 사이 텀이 길 땐 일정을 나흘 정도 잡아서 식구들과 가서 함께 청소하고, 제주도를 여행했다.


 예약 사이 텀이 짧을 땐 부모님께 아이들을 부탁하고, 1박 2일 일정으로 혼자 청소하러 다녀왔다.


 식구들과 함께 갈 땐, 돈 쓴다는 죄책감 없이 이 참에 다 같이 "뜻밖의" 제주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코로나이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서 그동안 아이들과 여행을 별로 가지 못했는데, 그 여행의 스케일을 오히려 키워서 놀러 다니는 것 같았다.    


 혼자 갈 땐, 혼자 제주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청소하다가도 제주도의 식당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순간순간이 좋았다. 혼자 잠드는 밤도 더 이상 예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제주도를 떠나올 때마다



첫 번째 손님이 다녀간 이후, 꾸준하게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나는 최소한 매달, 기간이 짧을 때는 2주 간격으로 제주도에 갔다.



청소를 마치고, 그 집의 문을 닫고 떠나는 순간부터

산을 넘어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리고

서울을 관통하고

그렇게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 그 곳에서의 며칠은 꿈을 꾸다 온 것 같다.

다녀온 뒤로는 하루이틀 서울에서의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그 곳 생각이 나는데, 일하다 보면 금세 또 현실에 푹 젖어든다.




어쩌다가 가는 휴가지가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정해진 같은 장소에 다녀오다 보니,

제주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계속, 계속, 끝에서부터 다시 이어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가고, 가고 또 가도.

이런저런 힘든 일들로, 몸도 지치고, 시간에 쫓겨갈 때도

언제나 마지막엔 제주도의 넓은 들판과 나지막한 산, 거대한 구름들을 뒤에 두고 돌아가는 기분이 아렸다.



오랫동안 제주도에 살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했고,

이렇게라도 억지로 집을 두고 한 다리를 걸쳤다.


이렇게 원 없이 다니다 보면 내 마음은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될까?

어디가 진짜 내 삶이 될까.

나도 알 수 없었지만, 계속 가보고 싶었다.





(*이후 브런치북2에서 예정된 글

- 다양한 손님들, 가장 고마웠던 손님, 가장 힘들었던 손님

- 드디어 바다에 가다.

- 지네에 맞서다.

- 집이 망가졌던 날

- 가족의 추억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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