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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몽 Oct 15. 2023

셀프 집 단장과 셀프 홍보

혼자서 모두 꾸려간 작은 집

집 구매 이후 약 4주간, 시간이 되는대로 제주도를 들락거리면서 모든 준비를 동시에 했다.


 

집 단장
(페인트칠, 물건 구입, 조명 교체, 나무 심기)

 

제주도 출발 전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해서 미리 싹 다 보내놓고,

제주도에 도착하면 집을 페인트칠하고, 택배로 온 물건들을 풀어헤쳐 세팅했다.


필요한 가전들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에서 집을 산 것인데도,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은 정말 정말 많았다. 미리 생각 못해서 제주도로 배송시키지 못한 물건들은, 차를 몰고 마을 마트에 가서 사 오거나, 거기에 없는 물건(주로 좀 단정하고 예쁜 물건들, 고산리 마트 물건들은 다 총천연색이다.)은 제주도 시내 이마트로 나가서 잔뜩 사 왔다.


  이불, 전자레인지, 전기주전자, 서랍장, 식기도구, 컵, 그릇, 커튼, 창고(말 그대로 창고), 청소도구, 쓰레기통, 수건....


사실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는데, 내가 스스로 그 집에서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이것도 없으면 불편하고, 저것도 없으면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결국 다 사들였다.


돈과 시간이 들어서 그렇지, 이렇게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한꺼번에 갖추는 일은 결혼할 때나 한 번 정도 해볼 수 있는 일들일 것이다. 적성에 딱 맞고 정말 재미있었다.

 평소 같으면 돈 아껴가며 안 살 것들도 '손님들 써야 하니까..'라는 핑계를 앞세워 깔끔하고 예뻐 보이는 것들을 왕창 구매했다.


물건들을 어느 정도 다 갖추고 페인트칠도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2가지가 더 욕심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천장마다 달려있는 지나치게 밝고 쨍한 형광등, 하나는 (조경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자갈들만 깔려 있는 너무 휑한 마당.


 고산리 인근에는 문을 연 조명가게도 없어서 (제주도에서 뭔가를 하려면 영업시간을 꼭 미리 체크해야 한다. 대부분 영업시간이 길지 않고, 주말에는 안 한다.) "평일", 제주도에 "아침"에 떨어지는 날을 골라서 제주집에 가는 길에 시내의 조명가게에 들어가 집 안팎의 조명을 모두 한꺼번에 구입했다. 다행히 조명가게 사장님이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의 집까지 설치해 주러 오셔서 그날 하루에 집 안의 조명을 모두 교체할 수 있었다.


 그다음, 마당은 그저 나무만 몇 개 심기로 했다.

하지만 그 나무를 파는 곳을 찾기도 어려워서, 결국 하루 날을 잡아 제주 시내로 방향을 틀어 "나무 시장"과 "농원"을 둘러보았다.


 수형이 멋지고 내 키보다도 큰 나무를 하나 사고 싶었는데, 그렇게 큰 나무는 너무 비싸고 잘 팔지도 않았다.

 결국 작은 소철나무 2그루, 구아바 나무 1그루, 어린 하귤나무 2그루를 샀다. 이렇게만 사도 내 작은 렌터카에 싣고 올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그날 가게에서 오후 트럭으로 배달해 주셨다.


 나는 이웃집에서 빌려온 삽 (삽도 미리 안 사두고, 마트에서는 안 팔아서 용기를 내어 옆집 아저씨게 말을 걸었다)으로 구덩이를 파서 한 그루씩 심었다. 다소 초라하고 비실해 보이는 어린 나무들임에도 불구하고, 파쇄석 자갈과 돌담으로만 이루어진 마당 가장자리에 푸른 잎사귀들이 자리 잡자 놀랍도록 마당의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식물은 정말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깊게 느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제주공항 근처의 농원에 틈틈이 들러서 "은사초"도 여러 개 사 와서 마당 가장자리에 심었다. 처음에는 벼 모종처럼 앙상한 풀 몇 포기의 느낌이었는데, 3년 차가 된 이 시점에는 아주 풍성하고 뚱뚱한 풀이되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첫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딱히 "언제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데드라인은 없었지만 해야 할 것들이 눈앞에 계속 보여서 나날이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셀프 홍보, 마케팅


 "어떻게 손님을 불러오지?"

 이게 가장 막막한 부분이었다.


직접 한 달 살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숙박 서비스를 이용해 본 소비자로서의 경험은 풍부했으니 내가 직접 써봤던 수단들을 생각해 보고,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한 달 살기 숙소를 어떻게 구하는지 살펴보았다.


크게 3가지 정도의 루트가 있었다.


1) 에어비앤비

2) 한 달 살기 인터넷 카페

3) 개인 홍보(블로그 등 SNS)


손님은 어디에서 찾아올지 모르니, 3가지 길을 동시에 나아갔다.


일단 제주집의 이름을 지었고,

페인트칠과 집단장이 다 끝나갈 무렵부터 열심히 집 사진을 찍었다.

블로그를 하나 개설해서, 집을 사서 꾸며간 이야기부터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도 등록했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야만 되는 장사가 아니고, 한 달에 한 명(한 팀), 1년 내 내해도 12팀이 전부이다. 결국엔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만약 내가 이걸 보면 마음에 들까?' 생각하면서 준비했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무척 재미있었다.


 나는 본업에 있어서도 홍보를 위해 SNS를 해오긴 했지만, 별도의 마케팅이나 광고를 하지 않으니 방문객 수는 매우 저조했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는 경우는 희박했다. 그래도 수년간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아도 묵묵히 글을 올려왔는데, 그때 해본 경험이 뜻 밖에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만 보는 일기가 아닌 누군가가 볼 것을 전제로 하고, 실제로는 홍보가 목적이면서 은근히 그런 부분은 감추는 글쓰기를 홀로 몇 년 했더니, 이번 한 달 살기 집 홍보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고 술술 되었다.


 집 단장한 내용, 집 구조 사진들, 집에 갖춰진 물품들, 집 주변 풍경들에 관한 블로그 글을 5개쯤 올리고, 동시에 제주도 한 달 살기 인터넷 카페의 글들을 매일 살펴보았다.


 한 달 살기 가격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깜깜했는데, 인터넷 카페를 살펴보니 처음 집을 살 때 내가 예상했던 가격보다 약 2배 정도의 느낌으로 시세가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엔 코로나가 한참 유행이라 제주도에도 사람들이 별로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해외에 갈 수도 없고 도시에 있어봤자 집에만 있어야 하니, 제주도 한 달 살기 수요가 폭증하던 때였다. 그래서 나도 규모가 비슷해 보이는 집들의 컨디션과 가격을 참고해서 적당히 저렴한 가격을 정했다. 

 

 이렇게 가격까지 정해지고, 일단 사람이 들어와서 무리 없이 지낼 수 있는 상태까지 집이 만들어지고, 기본적인 안내사항도 모두 블로그에 업데이트를 마치자, 준비는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블로그 방문자 수는 하루에 2,3명 수준으로, 이것만으로는 손님이 올리가 없기 때문에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려보기로 했다. 한 달 살기 집을 찾는 사람들이 올린 글을 읽어보니, "한적한 곳, 1,2명이 지낼 곳, 바다가 멀지 않은 곳, 작아도 되도록 단독주택, 주차가능한 곳"을 찾는 글들이 꽤 보였다. '이건 바로 우리 집이 아닌가??' 싶은 자신감이 솟아났다. 경쟁력이 있다고 느꼈다.


 집을 찾는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정해진 광고 비용을 내야 했다. 나는 인터넷 카페에 돈을 결제하고, 우리 집 같은 집을 찾는 사람들의 글에 모두 댓글을 달고,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전체적인 집소개의 글도 올렸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집을 꾸미고, 해가 진 시간에는 이렇게 열심히 인터넷 글들을 올렸다.



첫 손님이 오다.


 5월 한 달 내내 제주집 준비를 하면서 몸이 많이 지쳤다.

 5월 마지막주 주말엔 아이들이 아빠를 만나러 가서 집에 혼자 남게 되자, 그냥 이번 주말엔 좀 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인터넷 카페에 열심히 댓글을 달고 홍보를 했더니, 2, 3군데에서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물어만 보고 확정된 것은 없었다.


 이제 집에 가면 은사초 정도만 심고, 손님맞이를 위해 집 창틀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닦을 일만 남았었다.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니, 누가 확실하게 오기로 약속하면 그 직전에 갈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토요일 오후 그냥 일단 또 가보기로 결정했다.

 

 아이들 없이 나 혼자 가는 건 어렵지 않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에, 여러 명 중 1명의 문의에 진전이 있었다. 구체적인 일정과 가격, 인원까지 정해지고, 나의 제안에 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단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휴대전화를 비행기 모드로 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1시간이 흐르고,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따뜻한 공기를 맞으면서 렌터카를 찾으러 갔다.

 휴대전화를 다시 켰고, 그 사이에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예약하겠습니다. 계좌번호로 000원 보내겠습니다"


그런 후, 정말로 계좌에 돈이 입금되었다.

마음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이럴 줄 알고 그날 제주도에 간 것은 아니었는데, 주말에 무리해서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손님이 오는 것은 앞으로 약 3일 뒤.

 이제 정말 제대로 마지막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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