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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 사람의 모험 3

도시인의 제주집 운영일지 16

by 시나몽

아침이 밝았다.


집 상태가 원래부터 깨끗한 편이었고, 우리가 집에서 밥을 해 먹지는 않았으니 이제 마당에 커다란 잡초들을 뽑는 것 외에는 이제 크게 남은 일은 없었다.


오늘은 특별히 계획해 둔 일정은 없고, 집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경기도의 집까지 무사히 돌아가면 되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차근차근 집을 돌아다니며 마지막 정리를 했다.


아이들은 또 상을 펴고 앉아서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그 모습이 또한 애틋해서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공간에서 함께 있으니 여행 온 것 같은 느낌도 나고,

한편으론 처음부터 내가 다 가꾼 내 집이고, 예전에도 왔고 다음에도 또 올 집이어서인지.. 스쳐가는 여행이 아닌 독립된 공간에서 잠깐 우리 세 식구만의 삶을 살아보는 느낌도 났다.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방법은 없었지만,

잠깐 그 순간은 이렇게 셋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휴대폰 게임도 참 많이 하고 TV도 보았지만, 제주집에 오면 심심함을 느끼다가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기 시작한다.

나 역시 제주집에 오면 청소할 게 많아서 아이들을 몇 시간이고 내버려 두는데, 그럴 때면 직접 만화를 그려서 가져오기도 하고, 제법 그럴싸한 제주도 바다, 노을 풍경을 그려서 가져오기도 한다.

창의성은 심심함에서 나오는 것이구나.


드디어 내가 가장 신경 쓰는 최종 마무리(머리카락, 쓰레기 점검) 작업에 들어갔고, 그동안 아이들은 마당에서 기다렸다. 문단속을 하고 다시 집에 작별인사를 했다.

늘 그랬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잘 있어. 또 올게."


갈치구이의 기억


공항에 가기 전에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제주집 근처의 한정식 집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식사이니 저렴한 점심 정식만 시키지 않고, 큰맘 먹고 비싼 갈치구이를 시켰다.


평소였다면 또 둘 다 내 옆에 앉겠다며 싸우다가 결국 4명 테이블의 한쪽면에 셋이 나란히 끼여 앉았을 텐데,

오늘은 얌전히 나를 마주 보고 둘이 앉았다.


반찬들이 수북하게 나오고, 드디어 갈치구이가 나왔다.

뜨끈하게 맛있을 때 먹이고 싶었는데, 이거 먹이려면 내가 살 다 발라야 한다.

갈치구이는 다른 생선에 비해 살 발라내는 것이 쉬운 편인데, 또 이게 잘 발라내려면 어렵다.


오래전 생각이 났다.

내가 집에서 살림만 하던 몇 년 전에는, 이것저것 요리를 많이 했지만 갈치를 사다 구워 먹은 적은 별로 없었다.

생선구이는 애들이 너무 어려서 가시 때문에 잘 못 먹기도 했고, 뒤처리할 때 비린내가 나서 잘 안 했었다.

그래서 직접 애들에게 갈치구이 살을 발라줘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식당 반찬으로 나오면 먹기 좋게 조금씩 발라준 정도.


더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면,

원래의 우리 집은 갈치구이를 자주 먹는 편이었다.

엄마는 고등어구이, 갈치구이를 곧잘 해주셨고, 특히 갈치구이가 상에 올라오면 아빠가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샤샤샥 발라서 가장 가운데 크고 하얀 살을 내게 주시곤 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랬다.

아마 지금도 집에서 갈치구이를 먹는다면 아빠는 갈치살을 발라 주실 것 같다.

나는 엄청 사랑받는 딸이었구나.

나에겐 수십 년 동안 갈치를 구워주고, 살을 발라주는 존재가 있다.



갈치구이가 식기 전에 허겁지겁 살을 잘 발라내서 부지런히 아이들 밥공기에 넣어줬다.

애들은 밥 반공기가 비워져 갈 때까지 진짜 쉬지 않고 계속 밥과 갈치구이를 입에 밀어 넣었다.

마구마구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진짜 돈이 아깝지 않고 마음이 행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비싼 갈치구이를, 제주도까지 와서, 내가 애들을 먹이고 있으니 나 스스로가 굉장히 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 진짜 멀리까지 왔구나.. 나 생각보다 애들이랑 잘 해내는구나.

"자기 효능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던데,

그때 내 자아효능감은 최정점을 찍었다.



그렇게 기쁜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가서 다시 긴긴 길을 떠나 밤에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모험을 끝내고 집에 도착한 우리들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척 반겨주셨고

우린 셋이서 무엇을 했는지 무척 떠벌렸다.



사랑


공항버스에 올라탔을 때, 이제 모든 여정이 거의 다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좀 풀렸고,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잠이 들었다.

나는 어쩐지 마음이 벅차올라 휴대폰을 꺼내 그때의 심경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공항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사랑.


흔해 빠진 단어지만, 내 마음속으로 와서 닿은 느낌이랄까.

그 단어가 머릿속에 확실하게 떠오르고, 이걸 대체할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원래 내가 먹는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먼저였던 인간인데,

아이들 돌보는 것은 그냥 내 본능과 욕구를 어느 정도 눌러가면서 할 수밖에 없는 일이란 생각이었는데..


이상하게

이번엔 모든 게 자연스럽고

이번엔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먹고 싶은 걸 먹으러 가고

(예전엔 내가 먹고 싶은 곳으로 꼬셔서 데리고 감)

아이들이 갖고 싶은 걸 사주고 싶고

아이들이 가고 싶은데 데려다주고 싶었다.

행복한 얼굴과 행복한 목소리,

밝은 웃음소리만으로도

정말로 좋았다.


나는 나만을 위해서 하거나,

내가 혼자 즐거운 것보단


이제 사랑하는 존재가 행복해하는 걸 보는 데서 더 큰 행복이 있다는 걸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이게 사랑인가 보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했다.

아! 참 탁월한 해석이다.



세 사람의 모험을 마치며...


자기 효능감은 역시 독립적인 생활에서만 생겨날 수 있고, 몸은 고돼도 다른 에너지가 발생한다.


아이들도 역시 그렇겠지.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만 잘 데리고 다니고, 그 이후엔 혼자서 부딪혀 보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혼자 해내야 한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면,

누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무기력한 느낌이 계속 들게 하는 것이 싫었었다.

이제 와서 보니 나 스스로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 이유였고,

부모님이 다 큰 나를 아이처럼 대했던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러나, 더 알고 나니 그 역시도 그저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을 뿐이었구나.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예전과 별 다르지 않은 생활이 다시 이어졌지만

내 마음만은 참 달라졌다.

한번 내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고 나니, 그 뒤로는 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아도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어서 도움을 받는 게 아니고, 할 수 있지만 도움을 받아서 더 잘 살아보려 하는 것이니깐.


부모님도 내가 애들을 데리고 제주도에 혼자 다녀오자 그 뒤로는 뭔가 나를 달리 봐주는 분위기가 생겨난 느낌이다.


청소하러 다녀온 짧은 2박 3일이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 부모님의 사랑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던 참 값지고 귀한 3일이었다.


앗, 그리고 하나 더.

둘째는 원래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못했는데(무서워해서 늘 내가 안아올렸음) 돌아올 때에는 에스컬레이터에 스스로 올라타게 되었다.

첫째는 본인의 캐리어를 전담해서 끌수 있게 되었고.

모두 다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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