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드래빗 Jun 25. 2018

공간, 비울수록 채워지는 마법

< 물건을 비움으로써 활용이 다양해진 공간>


지금 이 시각  우리 집 거실의 모습이다.

우리 집은 흔히 볼 수 있는 TV나 소파가 없다. 미세먼지에 대비한 공기청정기와 고무나무 화분 하나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고정적인 물건들이 아니라 언제든지 이동 가능한 소품일 뿐이다. 요즘은 학령기 아동을 둔 집에서는 TV 대신 책장을, 소파를 치우고 테이블을 놓기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책도 복잡한 공간에서 읽는 걸 싫어해 전부 숨겨둔다. (집에 책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 집은 서재가 있고 책 넣을 곳이 모자라 신발장도 하나는 책장으로 쓰고 있다.)

저 거실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저 의자에 앉아 발을 짐볼 위에 걸치고 책을 본다. 학교 다녀온 딸은 저 짐볼을 타고 앉아서 나랑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거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요가 매트는 스트레칭할 때 이용하지만 가끔은 의자에 스마트폰을 걸쳐놓고 유튜브를 통해 홈트(home training :집에서 운동하는 것)를 할 때 유용하게 쓴다. 손님들이 오면 주방의 6인용 테이블을 거실 한가운데로 옮겨 놓고 식사를 하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간접조명만 켜둔 채로 딸과 남편은 춤을 춘다. 때론 요가매트를 무대 삼고 간접조명을 무대 조명으로 생각하여 딸의 플루트 연주회가 펼쳐지기도 한다. 딸 친구들이 파자마 파티하러 놀러 오면 거실에 이불을 펴주고 밤늦게까지 3~4명의 십 대 아이들이 조잘대며 잘도 논다. 가장 편한 건 청소할 때다. 요가매트를 접어 의자 위에 올려두고 청소기를 돌리면 세상 편하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공간
물건을 버리고 추억을 쌓는다.



나도 처음부터 심플 라이프에 대한 개념이 있었던 건 아니다.

회사에 입사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보이고 싶었다. 퇴근길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하고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이런 대박 기회는 또 오기 힘들다는 심정으로 옷이며 백이며 사돈의 팔촌의 선물까지 다 사 왔었다.

다행히 나의 이러한 소비 생활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가정교육이 그래서 무서운 것 같다. 월급쟁이 아빠 밑에서 엄마가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왔던 어린 시절 환경은 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불고기에 고기가 적어 당면을 더 넣었어야 했던 것이 우리 엄마였다.


월급으로 쇼핑해볼 만큼 해봤으니 미련은 없었고, 돈을 자꾸 쓰는 삶이 불편해져 갔다. 그리고 돈을 모아야 결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철이 들어버린 것이다. 먼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지 않는다. 내가 더 좋은 옷을 입었다고 우월감으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몇 가지를 내려놓았다. 매일 1회용 콘택트렌즈를 끼던 것을 멈추고 안경쟁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름에도 재킷을 입어야 한다는 기준에서 벗어나 그냥 반팔 셔츠를 입거나 린넨을 입고 다녔다. 그것만 해도 무언가를 사는 데 쓰는 돈을 30% 정도 절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나씩 안 삼으로써 심플 라이프를 다가갔다.




70% 세일한대. 대박이야. 꼭 사야 돼.

아니, 안 사면 100% 할인.



물건을 산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가기, 1년 동안 소비재 상품 사지 말기 등 여러 가지 실험 다큐가 있었다.

그만큼 소비는 인간의 뇌에서 통제가 가능한 항목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나 생각해보기 위해 물건을 사는 방법에 따라 3가지 등급으로 구분해보려 한다.


1. 하수 : 싼 걸 싸게 산다.
말 그대로다. 마트나 지하철역에서 싸게 파는 질이 별로인 상품을 산다.
이런 것들은 사용하는 내내 만족감도 떨어지고 집 안에 쌓이게 되면 복잡해진다.


2. 중수 : 싼 건 다량으로 사고 비싼 건 안 산다.
퀄리티가 괜찮은 상품인데 1+1 등의 행사를 하거나 창고형 할인마트에서 다량으로 구매한다.
이렇게 사는 건 주변 이웃과 나눌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그러나 명품 등 고가의 상품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3. 고수 : 가치에 부합하면 싸든 비싸든 산다.
길에서 야채 다듬어 파시는 할머니 꺼는 가격에 상관없이 산다.
동네 채소가 신선한 마트, 고기가 좋은 마트, 공산품이 싼 마트 등을 구분하여 다닌다.
스스로에게 시계나 가방 등 인생템을 선물하기도 한다.
적게나마 기부금을 낸다.


< 출처: MBC 다큐 스페셜 '돈, 모으고 있으세요?'>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인해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도한 소비를 한다고 보는 게 맞다. 왜냐하면 쇼핑을 하는 그 순간 절대적으로 우위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나에게 굽신거리고 나는 왕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이 감정에 중독되고 있지만 그들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YOLO’라는 허울 좋은 마케팅 수단에 걸려 넘어진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올리비아 멜란(Olivia Melan)은 이렇게 말했다.  

“자존감을 낮을 때 사람들은 돈을 더 써요. 자존감이 낮아지면 소비로 그것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죠. 기분이 안 좋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풀리는 것, 내적 감정이 안 좋으니 겉보기라도 좋게 하려는 거죠.”






월수입이 천만 원을 넘는 사람들도 돈이 없다며 저축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야 하고 비싼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본인이 남들보다 더 많이 번다고 생각하기에 지출 관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소비의 끝은 딱 하나다. 겨울을 맞이하는 베짱이.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나는 잘 버는 만큼 잘 쓰고 있는지 말이다.


-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서 취하는 깊은 숙면

- 클렌저와 샴푸병에 점령당한 욕실을 비워내고 얻는 청결함

- 비워진 식탁에서 소박하게 차려 먹는 저녁 식사

- 1년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기부하면서 받는 연말정산용 기부금 영수증

- 복잡한 것들을 덜어내고 텅 빈 머리에서 나오는 새로운 창의성

- 물건을 쇼핑하는 것 대신 펀드와 적금을 쇼핑하면서 얻는 경제적 안정감

-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히 향초를 피우고 사색하는 명상


이 모든 것들을 내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면 지금부터 주변을 정리해보자. 분명 다른 추억들로 내 삶이 풍요로와질 것이다.





이전 14화 아파트, 내 인생 최대의 소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