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사진의 뒷모습은 제가 아닙니다. 사진 출처 : unsplash.com]
도서관에서 논다.
처음 도서관에 갔던 것은 1994년, 세상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지내고 있던 때였다. 당시 내가 살던 도시에는 공립 도서관이 딱 하나뿐이었다. 생애 첫 입시였던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준비하며 도서관이란 곳을 갔는데 공부를 하긴 했나 싶다. 친구랑 아침 일찍 자리 맡는다고 가고선 자습서는 책상 위에 두고 그저 돌아다니기 바빴다. 자판기 캔커피를 마시고 식당에 내려가 라면을 먹고, 머리 좀 식히느라 서가에 들어가 책 한 권 뽑아 보다 보면 어느덧 해가 지는 시간.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도서관에 숨어본다.
대학 1학년 때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로선 낯선 서울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내 말투 하나하나 조심스러웠고 행여 촌티 나는 옷차림이 들킬까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던 차 봉사 학점 과목을 도서관으로 신청했다. 하루 2시간 트레이를 끌고 서가에 책을 되돌려 꽂는 일로 그리 고된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쉴 수 있는 시간도 많고 아무 때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나는 서가 사이에 앉아 시집을 많이 읽곤 했다. IMF 이후 어수선한 나라 경제와 현실적으로 닥친 많은 사건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상의 공간'이라 할까. 동아리 고학번 선배들은 줄줄이 취업이 취소되었다는 소식만 전해왔었고, 무얼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고장 난 나침반같이 뱅글뱅글 돌던 내 마음이 유일하게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채워가다.
최종 면접을 준비할 때였다. 전공 관련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도서관에서 비즈니스 잡지 3년 치를 몽땅 외워버렸다. 긴급 수혈한 책들이 다행히 내 머릿속에 있던 지식들과 융합을 잘 하여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보여줬다. (지금은 이런 식으로는 안될 것 같지만) 당시 실무 면접관들에게 최고의 반응을 끌어냈다. 생각해보면 꽤 어설픈 PT였건만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도서관에 물어본다.
도서관 바로 옆 아파트를 산 게 운명이랄까?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경제 공부를 하며, 뒤늦게 임용고시를 꿈꾸며 수없이 도서관을 들락거린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퇴근하고 밤 10시 도서관이 문 닫을 때까지 책을 10권도 넘게 보며 답을 찾으려 했다. 물론 찾은 답도 있고 못 찾은 답도 있지만 말이다.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기도 했고, 위안을 받을 때도 있었다.
오랫동안 도서관을 다니다 보면 나름의 철칙이 생긴다. 나는 책을 한 권만 읽는 건 한 작가의 사고에 국한되는 것이라 위험하다 생각하며, 여러 책을 읽되 자랑하지 않고 읽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게 내 몸에 밴 철칙이다.
도서관에서 나를 본다.
몇 주 전 중고등학생들 기말고사 기간이었나 보다. 학생들이 도서관 휴게실에서 문제집에서 서로 역사 문제를 내주고 있다. 매점에서 음료수를 마시거나 라면을 먹는 아이들도 보인다. 운동복 바람에 머리를 질끈 묵고 고시서를 보고 있는 어른들도 있다. 사물함에 책을 잔뜩 넣고 방석도 있는 것 같다. 막 은퇴하신 50대 아저씨들과 아이들 책을 반납하러 온 엄마들도 있고, 도서관 문화프로그램을 수강하러 오신 여사님들도 계신다.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만나는 시간이다. 이들을 관조하는 내가 즐거워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도서관에서 책을 쓴다.
첨부터 책을 쓰려고 브런치를 연재한 건 아닌데, 우연히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16년 직장 생활하며 월급을 모으고 투자를 해왔던 내 경험을 쓴 <경제 공부하는 직장인 시간 부자 되다>가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물론 제목도 바뀔 것이고 내용도 전면 수정이다.
그래서 위클리 연재가 끝났던 7월 초부터 지금은 매일 시간을 내어 도서관을 간다. 어렵고 복잡한 경제와 돈에 관한 이야기를 에센셜 하게 뽑아내어, 바쁘고 걱정 많은 직장인들을 도울 수 있게끔 글을 쓰고 버리고를 반복 중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몰라서 당하지(?) 않고, 몰라서 세월을 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돈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내가 힘이 들어야 독자에게 쉽게 읽힐 수 있다는 마음뿐이다.
이 여름, 도서관에서 내 이름을 건 첫 번째 책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