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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래빗 Jul 03. 2019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 '돈'보다 '시간'이다.

아침에 건너올 수 있어?
오이소박이 조금 남겨놓았어.
통 가지고 와서 가져가렴.
아침밥도 와서 먹고^^




새벽 6시 32분, 엄마가 카톡을 보내셨다. 나는 늘 새벽 5시 50분에 기상한다.엄마가 카톡을 보내던 그 시간  한창 신문지에 형광펜 긋고 있었다. 그냥 신문 읽는 거 한 번 스크랩용으로 정리나 해볼까 해서 올 초에 시작한 일이 커져버렸다.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까지 도합 9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내가 올리는 '경제 기사로 여는 아침'이라는 타이틀의 신문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2시 40분이면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가 나며 신문배달직원이 툭하고 현관문 쪽으로 신문을 던지고 가신다. 나는 가끔 글을 쓰느라 잠을 못 자고 있을 때 신문 도착 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그렇게 새벽을 맞이하는 날도 신문은 6시 넘어 읽는다. 읽고 Top 10개의 기사를 뽑아 전후 배경과 내 생각을 정리해서 쓴다. 일관된 시선으로 신문 전체를 해석해서 공유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한 일이 다.


https://blog.naver.com/honoluluzoo/221576402765

 




엄마는 내 모든 스케줄을 꿰차고 있기 때문에 오늘 톡을 하신 게 틀림없다. 막판 퇴고를 주말까지 마무리한 것도 아시고, 어제는 내가 미용실 예약이 돼 있었다는 것도 아셨다. 그래서 오늘 아무 약속이나 계획을 만들 수 없고 내가 깨서 신문을 보고 있을 그 시간,  새벽 6시 32분에 기습적으로 톡을 날리신 게 틀림없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맥쓰루(Mac through)에 들렀다. 커피 충전 없이는 거기까지 운전해 갈 정신이 없어서였다. 물론 글 안 쓸 때는 커피를 안 마시기고 엄마랑 약속했기 때문에 남은 커피는 차에 두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지만.


9시쯤 엄마 집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한 상을 가득 차려두셨다. 아침이 무슨 잔칫상 같다고. 나는 탄수화물은 안 먹는다며, 16시간 단식은 망했다느니  타박을 해도 소용없다. 나는 누룽지 국물에 살구랑 블루베리, 수박으로 디저트까지 먹고 나서야 식탁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좀 씻고 나왔더니 이번에 피곤할 테니 자라 하신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허탈하게 웃음만 났다. 아마 이 두 어르신은 내가 안 왔으면 심심해서 어쨌을까 심히 걱정이 됐다.


가만히 집안을 둘러 다니며 예전에 내가 쓰던 애정 어린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시계, 초등학교 때 읽던 소설책, 결국 어려워서 읽다 포기한 한국문학들... 그리고 엄마 작품들.


< 좌: 30년도 넘은 골드스타 시계 , 우 : '복이 구름과 같아라'는 뜻의 서예작품 >



그렇게 오전 시간을 놀멍 쉬멍 보내다가 점심 뭐 먹을까 소리를 한다.

엄마는 아빠더러 나 맛있는 거 사주라 하시고, 나는 인세 받았다고 내가 사겠다 하고, 아빠는 그냥 더운데 국수나 먹으러 가자 하시고, 엄마는 근사한 데 가자 하시고 이렇게 점심에 대한 이슈로 격론을 벌인다. 결국 내가 인스타 서치로 찾은 한정식 집을 가기로 결론을 내고 예약해버렸다. 모든 언쟁은 그걸로 종결. 젊은 사람 말 는 거라고 한 마디 하면 두 분은 조용해지신다.



< 하남 미사 강변도시 근처의 한정식집 '한채당' >



아빠가 원래 그렇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으시는 분이 아닌데... 연속 포즈를 잡으랜다. 엄마랑 찍고, 아빠랑 찍고, 같이 또 찍고 , 정원에서도 찍고.... 여기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보다.

식사하는 와중에 지인들의 전화가 계속 오신다. 이모랑 통화하실 때도 , 고향 분 전화에도, 오후에 취미교실 같이 다니시는 분 전화에도 연속 자랑이다.

" 작가 하는 둘째 딸이 점심 사준대서 나왔어요. 여기 좋네.. 담에 같이 또 와요."

대강 들어봐도 자식 자랑, 내 자식이 나를 사랑해줘서 시간을 내준 거 자랑... 자랑의 연속이다. 작가가 뭐 대수라고. 예전에 회사 다닐 때 돈은 더 벌었고 더 많이 보내드렸는데... 내가 바빠서 곁에 없었을 때는 어떤 자랑을 하시고 계셨을까..





16년 회사 생활을 마침표를 찍을 때 손익분기점을 생각했었다.

손익분기점이란, 투입 자원 대비 산출 자원이 더 적어지는 시점을 의미한다. 내가 생각했던 회사 생활의 손익분기점은 내가 들이는 시간 대비 얻고자 하는 효용이 떨어지는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얻고자 하는 효용이 바로 '돈'이고 투입하는 자원이 '시간'인 셈이다. 누구나 그 손익분기점의 위치는 다를 것이다. 좀 더 높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보다 낮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욕심 많다고 탓하거나 무력하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그 지점에 다다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터.


여하튼,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시간'을 가진 나로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들을 많이 느끼고 산다. 다행히 시간 부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했고, 생각지 못하게 부모님의 늙어가시는 모습을 옆에서 봐드릴 수 있다는 덤을 얻은 것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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