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드래빗 Jul 21. 2023

소설 <나의 꿈, 부자 할머니>

프롤로그_ 늙어감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베를린을 경유하여 스톡홀름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태양은 저녁인데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달려도 저녁이었고,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 후 출장자들과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도 저녁이었다. 


대체 어둠은 언제 오는 건가. 이곳은 시간이 멈춘 도시인가?

처음 밟는 북유럽의 땅. 여름이지만 차가운 기운과 낯선 어두움. 그렇게 7월의 북유럽 밤은 저녁과 혼재된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9년 차 마케터이자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지윤에게 출장은 휴가였다. 시간에 대한 강박과 조급함은 사라지고 온전히 일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니까. 누구나 그렇듯,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은 설렘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온 지윤은 모처럼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베를린 공항 서점에서 구입한 문고판 서적을 펼치고,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문득 창밖을 내다봤는데 아직도 저녁인지 밤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의 개념을 잊은 채 부스럭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인가 아침인가.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4시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눈이 부셨다. 말로만 듣던 백야였다. 빛 때문인지 오랜 비행으로 피곤했던 까닭인지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잠들기가 아쉬워 호텔 주변이라도 산책하려고 옷을 챙겨 들었다. 스톡홀름은 스톡 Stock(나무 밑동)과 홀름(holm: 섬), 즉 나무 밑동과 같이 생긴 섬이라는 뜻이다. 차가운 북쪽 바다 발칸 해에 둘러싸인 섬이니 여름이라도 서늘할 수밖에.   

  

혼자 걷는다는 건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행위다. 길을 걷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춰서 상점 쇼윈도를 바라볼 수도 있고, 기묘한 생물을 관찰하거나 자연 풍광 또는 사람들의 지나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도 있다. 이렇게 팔을 자연스럽게 흔들며 시간의 쫓김 없이 걷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지윤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들이 있었다. 

딱 봐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바이커들이었다. 오토바이 양 옆에 매달린 짐의 규모를 봐서 여행 중인 듯했다. 그들은 매력적인 블랙 바이커재킷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을 만했다. 가만 보자. 아니! 이들은 모두 은발 아닌가. 노년의 부부 두 쌍이 오토바이로 북유럽 해변을 여행 중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고,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든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나이 드는 것도 꽤 괜찮겠다. 바쁘게 사느라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즐거움들을 찾을 여유가 생길 테니까. 저 사람들은 다음엔 또 어디로 여행해 볼까 기대하며 살겠지? 나도 나이가 들면 저들과 같을 수 있을까?’ 


지윤은 노년을 즐기고 있는 바이커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바쁘게 살아오느라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지윤은 이날 처음으로 늙어감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출장을 끝내고 돌아온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다시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간 지윤에게 스톡홀름 해변에서의 바이커들은 잊혀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래빗액트 벌써 11회나 발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