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도시 농부의 마음대로 경작하는 땅
오늘 서울에 비 소식이 있었다.
하루 종일 비님을 기다려서일까? 오후 4시부터 두두두 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동안 너무 더워서 밭의 잡초를 못 뽑아주었던 게 맘에 걸려서였다. 비까지 내려주니 땅도 젖어 있을 테고 잡초 뽑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이전에 직장 다닐 때는 비 오면
아~ 오늘 매출 꽝이다.
비싼 구두 못 신고 가겠다.
비도 오는데 따뜻한 국물 있는 걸로 점심 먹어야지.
가뜩이나 막히는 도로 더 막히겠네. 7시까지 집에 가야 되는데.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비 오는데 운치 있게 모닝커피나 마실까?
운동 끝나고 회원님들이랑 칼국수 먹으러 갈까?
햇빛도 안나니 빨래는 오늘 쉬어야겠다.
밭에 채소들이 물을 담뿍 먹고 있겠구나.
열무는 참 이상한 채소다.
엄마가 준 씨앗으로 심은지 한 달도 안 된 거 같은데 저렇게 무섭게 자라났다. 열무라는 채소를 어떻게 조리를 해야 될지 몰라 그냥 두고 봤다. 자이언트 열무가 돼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수확을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 열무를 뿌리째 뽑기 딱 좋았다.
(다 뽑은 고랑에는 다시 열무 씨를 심어주었다.)
나 : 엄마 , 열무 벌써 자라서 일단 뽑아 왔는데 어떻게 해야 돼?
엄마: 살살 물에 씻어서 열무김치 해 먹어.
나: 평생 김치 한 번 안 담가봤는데 어떻게 담가야 될지..
엄마 : 열무는 일단 굵은소금으로 한 시간 동안 절여두고. 양파, 마늘, 사과 갈아서 액젓 넣고 믹서기로 갈아. 풀 끓이고 고춧가루랑 설탕, 소금 조금 넣고 버무리면 돼. 간단하지?
나: 일단 한 번 해볼게. 엄마한테 열무 씨앗을 받아온 게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어.
< 열무김치 담그는 프로세스>
1. 채소를 씻는다.
2. 소금에 절인다.
3. 양념장을 준비한다.
4. 버무린다.
5. 김치통에 넣고 1~2일쯤 실온에서 익힌다.
6. 냉장고에 보관한다.
종일 운전하고, 돌아와서 밭매러 다녀와서, 저녁 식사 차리고, 김치까지 담갔으니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다.
정말 난 '소'인가 부다.
16년을 맨날 회사, 집만 오가며 열심히 살던 내게 베프가 그랬다.
넌 여우도 토끼도 아니야. 그냥 소야. 소.
인정 하긴 싫지만 나도 모르게 시간을 쪼개서 쓰는 게 습관이 된 거 같다. 게다가 요즘은 주 3회 운동까지 하고 있으니 체력이 더 좋아진 거 같다. 좋아진 체력으로 더 일한다. 슬프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8월까지는 서울에 계속 이렇게 조금씩 비가 내릴 거라 한다. 농심이라고 하던가. 비가 오니 잡초 뽑고 새로 씨앗 뿌릴 생각을 하는 나도 이미 농부가 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