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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lidayreading Feb 10. 2019

죄송하지만 아이는 낳지 않을게요.

지금의 마음을 적어본다.

죄송하지만, 미안하지만, 아이는 낳지 않을게요.


서호주의 도시 퍼스의 holmesandco 라는 펍, 카페.

경쾌한 음악과 힙스터들만이 올 것 같은 거리의 골목 안에 숨겨진 작은 카페에 앉아있다.

지난 한해 휴가를 못간 탓에, 15일간 서호주 살아보기를 진행 중이다.

남편의 큰 누나가 호주로 이민왔고, 둘째 언니와 그의 돌 지난 아가, 일곱살이 된 아가와 함께

비행기 내 베이비시터(?)라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호주에 휴가를 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주일만에 느끼는 첫 자유시간!


외조카 4명과 함께 일주일을 살아보고 보낸 후 느낀 단상은 아이들과 함께 온종일 살아보는 것과 잠깐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체험이라는 점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힘들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그래서 모두 존경해야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케어해야할 연약하고 보호해야하는 존재이므로 배려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아이들 중심으로 흘러가는 삶을, 어느 것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시간들

버려지는 시간이 많은 것 같은 순간들을 

어리석게도 '내'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이기적인 나는 견딜 수가 없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시도 때도 없이 싸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사건은 예기치 않게 온다.

밥 한 끼, 커피 한잔을 편히 마실 수가 없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잘 수가 없다는 기본 보장 조차 안되는 삶.

흩날리는 바람을, 그늘 아래에서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는 삶.아마도 아이를 낳고 몇년간은 그럴 거다.


더군다나,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가 없을 때보다 뿌듯하고 행복한가 하고 묻는다면?

이곳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여전히 아이가 없는 지인들이 대다수였던 나의 바운더리가 아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육아 전쟁 중인 언니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게 되는데

엄마들이야말로 누가 더 아이 때문에 힘든지 불행을 경쟁하는 삶이었다.

힘든 육아와 더 맘 같지않은 남편.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삶.

남편과 아이와 행복하게 삶을 나아가는 롤모델을 나만 못본걸까?


불행을 경쟁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 그건 이제 살면서 할만큼 했다.

단 한순간을 살아도 나답게, 살아있고 싶다.


아이를 낳으면 어때요? 라고 물으면,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엔 아이 때문에 더 행복해질거야. 아이가 없으면 나중에 외로워.

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아이를 생각하지 않고, 나이가 먹어 힘이 빠진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 아이를 키운다고 말한다.

아이의 행복은 누가 책임지겠냐고 말한다면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억지로 나답게 살아보자고 아둥바둥하는 우리와 내가 여전히 안쓰럽다. 

나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계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내가 낳은 아이가 자라서 고작 내가 된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끔찍하다.

이렇게 지탱해가기 위해 많이 울었고 좌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를 낳게 되면 적어도 나의 아이들에게 말도 안되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고 이 아이는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어른들이 만드는 세상은 어떤가?

결국 또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는 삶을 살게 되고

옆에 앉은 친구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누르고 올라가야 하는 삶의 정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32살 8월에 결혼했고 아이에 대해 제법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내가 갖고싶다고 갖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낳는다면 준비가 되어있을 때,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확신이 생길 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갖고 싶었다. 또한 작년만해도 올 여름 아이를 갖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여 이번 여행은 내게 삶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줬다.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워킹맘들의 책과 심지어 북토크도 다녀왔었고, 

관련된 다큐멘터리들도 많이 봐왔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하지만 실제로 함께 해보니 겪게 된 선명한 체험.


나는 일을 하면 더욱 살아있고, 퇴근 후의 고요한 시간. 즉, 책과 맥주와 고양이가 함께 하는 평온한 삶이 좋고, 혼자 있어도 절대 외롭지 않다. 그리고 함께 대화할 때 가장 즐거운 평생의 남편이 존재한다. 


남들이 낳으니까 혹 나중에 불행할까봐 억지로 불행을 미리 끌어안지 않으련다.

적어도 우리 부부가 더 행복하겠다는 확신이 있을 때 고민해보겠다.


적어도, 보통의 어른들처럼 즐거워할 무엇이 없어서 아이를 보고 억지 웃음을 짓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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