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피부 긍정주의
얼마 전까지 소셜 네트워크나 유튜브에서의
나의 직업은 ‘esthetician, ’ 에스테티션’으로 소개했었다.
‘esthetic’ 은 직역하면 ‘미학’이라는 뜻인데 피부라는 ‘문’을 통해 그 사람의 아름다움과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단순히 피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로서 설명할 수 있어서다.
지금의 나는 감히 ‘therapist’, ‘테라피스트’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라고 소개한다.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마음과 정신적인 자유에도 관심을 가지고 실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것이 가능할 때 전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에스테틱’을 찾는다. 에스테틱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두피나 얼굴의 피부, 몸의 피부, 몸의 실루엣, 손과 발의 모양새를 관리는데 경험에 의하면 실제로 많은 고객들이 이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결과적이고 표면적인 아름다움만을 중시하지 않으며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적인 변화에 만족한다.
뷰티&헬스 시장의 변화 추이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헬스장이 대유행하던 시절을 지나 요가, 요기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 명상과 싱잉 볼 등이 방송 매체들을 통해 많은 노출이 되는 것처럼 이너뷰티를 강조하는 시대에서 단순한 외형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구의 한 면 만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제 각각의 모양을 한 피부라는 ‘문’을 온몸에 휘감고 있다. 피부과 의사인 Dr. Monty Lyman박사의 책 ‘피부는 인생이다’에서는 피부를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측면까지 관여하는 우리 몸의 가장 친근한 신체 부위’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결코 피부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라고 이해하기 좋은 말이다.
나의 피부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4-5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이마와 뺨, 턱에 울긋불긋한 여드름이 처음 생겨 날 때쯤 그 또래라면 흔한 일로 ‘어른이 되면 자연히 없어진다’는 주위 어른들의 희망고문을 곧이곧대로 믿었건만 지금도 변함없이 나의 피부 타입은 여드름 피부이고 이미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나에게 결혼하면 없어진다 라는 2절의 희망고문을 주지 못할 것이다.
피부 문제에 대한 괴로움으로 시작된 나의 관심은 피부과의 레이저 시술과 화장품 수집으로 시작해 시중에 출시된 대다수의 화장품 브랜드를 섭렵하고, 바를 것을 직접 만들다 못해 직접 배우고 20대 여성의 피부 변화를 논문으로 쓰기에 이르렀다. 최근까지는 화장품의 끝판왕이라 알려진 유럽 에스테틱 화장품 한국지사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수많은 에스테틱 전문 브랜드들을 비교하며 좋은 피부들과 괴로운 피부들의 사례를 만나고 전문 피부관리사들을 교육하며 더욱이 ‘Skin positive’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이제 이만하면 자신만만하게 비용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지름길이라도 알려줄 만 하지만 오히려 나는 피부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워지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던지고 싶기 때문이다
피부의 문제는 일종의 ‘사이렌’과 같다. 단순히 피부 문제만이 아닌 피부와의 유기적으로 연결된 신체적인 내부의 문제이거나 외부환경, 감정, 스트레스 등 일상에서 ‘나’를 자극하는 어떤 복합적인 존재에 대한 알림이다.
내가 ‘therapist’’테라피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피부의 문제를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고 노력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알려진 ‘Body positive’라는 ‘자기 몸 긍정주의’ 말이 내가 건강하지 않아도 살찐 몸을 사랑하라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가진 피부의 특징이 정상이 아닌 범위에 있는 것이 아닌 고유의 특징이라고 여기는 ‘Skin positive’가 필요하다.
나의 피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가자. 그때에 진정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아름다움의 풍요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