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요

관계 속에 파묻히지 않기

by 홀짝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붙는 관계의 타이틀이 늘어만 간다. 예전에는 학생, 누군가의 아들, 동생, 손자, 조카, 사촌에 그리고 누군가의 친구 거기에 선배 혹은 후배 정도로 정리가 되던 것이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니 관계의 종류와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난 느낌이다.


관계 속의 나


나는 관계지향적이다. 한 때는 관계 의존적으로까지 갈 뻔했으나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인생의 의미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관계에 두고 있다. 나는 자존감이 비교적 낮은 사람이기 때문에 일찌감치 그런 성향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팍팍하고 지치다가도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를 가끔 만나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내가 고양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게 사는 거지 뭐’하면서 잠시나마 제법 호기로운 마음을 가져보기도 한다.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건지 관계로 인하여 내 마음이 고생한 경험도 못지않게 많았다. 예전에는 주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신경을 몹시도 많이 썼다. 다 같이 모여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상황을 복기하며 내가 한 말, 상대가 나에게 한 말과 표정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동원하여 혹시나 상대가 나를 좋지 않게 보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그 사람이 있는 곳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리고 온통 나와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에 빠졌다. 지금은 예전만큼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신경 쓰긴 하지만 그 때문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영향을 미치고는 있으나 나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다.


몇 해 전에는 이전과 조금 다른 양상으로 관계 때문에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랜 시간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는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과 한동안 의견 충돌이 잦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나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표현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의견과 행동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참고 있었지만 사실 참지 않고 있었다.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이미 나의 불만을 알아채지 못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으로 티를 내고 있었으니까. 상대를 이해하기에, 관계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참으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참지 아니함만 못하게 되어버렸다. 지금은 다시 좋은 관계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그때만 생각하면 그분께 미안한 마음이다. 불만에 가득 차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입을 닫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것도 몇 달 동안이나.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모르지만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건 그만큼 내가 이타적이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하면서 관계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배려가 어디 있겠나.


당시의 나는 문제의 원인이 한쪽에 있다기보다는 생각과 방식이 그저 다를 뿐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내가 화가 나 있었다는 것과 그 화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나는 화난 자신을 외면했다. 왜 화가 났는지 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화를 풀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면서 더 화가 났다. 상대의 심중은 그렇게도 깊이 이해하려고 했으면서 나를 살피지는 않았다. 이유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그 당시 내 화가 풀리지 않은 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 그 이유를 아예 몰랐던 게 아니라 그 이유가 너무 보잘것없어서 외면했던 것 같다. 나의 쪼잔함과 치사함을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그때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오히려 훨씬 빠르게 나아졌을 것이다. 나에게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없이는 '관계'도 없다


사람이 관계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는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 자신보다 관계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데에 있다. 사람들은 곧잘 여러 성공보다는 단 하나의 실패에 더 주목하고 신경을 쓴다. 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그러한데, 실패한 관계에 더욱 주목하기 때문에 관계의 실패를 피하려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다반사이고 오히려 그 때문에 관계의 실패를 앞당기기도 한다.


관계 유지를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 이상을 지탱하면서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 못해서 끊어지거나 나빠진 관계를 책임질 이유도 없다. 사람의 삶은 ‘나와 내가 아닌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첫 번째 주체는 나 자신이다. 타인과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사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내가 있어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걸 잊고 산다. 내가 누군가의 좋은 아들이나 딸, 형제, 친구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내가 나쁜 사람, 실패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지나치게 나와 관계 맺고 있는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나쁘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특정한 관계에 너무 큰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내가 주저앉을 지경에 이르게 되면, 내가 속한 다른 관계들마저 함께 위태로워질 수 있다.


나는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좋은 아들, 좋은 동생,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 내가 못나서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아 서글플 때도 있지만 나를 잊어가면서까지 누군가의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를 잊지 않아야 누군가의 좋은 사람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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