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나의 선택에 내 지분은 얼마나 있나

by 홀짝
선택의 기로가 내 앞에 놓였다


직장 생활을 하다 문득 내 마음속이 옛날 가난한 집 쌀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나는 집을 나서면서 바닥난 쌀독을 박박 긁어가며 한 줌도 되지 않는 각오와 긍정을 긁어모았다. ‘나는 괜찮다’,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거야’, ‘잘할 수 있어’그렇게 말라버린 자동차 연료탱크를 겨우 적실 수 있을 정도만 기름을 넣고 길을 나섰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내 다 떨어질 것이었다. 각오도 긍정도 연료도.


역시나 하루의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때부터 더는 스스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에서 나를 낑낑 밀고 갔다. 매일의 목적지는 늘 같다. 퇴근 시간, 하루의 끝. 나는 하루의 끝에서 오늘 하루를 버틴 보상으로 다시 한 줌도 되지 않는 각오와 긍정과 연료를 얻었다. 그런 하루들이 끝을 알 길 없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 무렵 퇴사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월급이 되는 일을 할 것이냐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냐.


꼭 퇴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삶의 걸음 앞에는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가 놓여있다. 진학과 전공, 취업과 퇴사, 결혼과 이혼처럼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굵직한 것에서부터 그밖에 일상적이고 자잘한 선택까지 꽤나 진부한 얘기지만 인생은 말 그대로 선택의 연속이다.


내 앞에 놓인 선택은 내가 하지만 늘 나 혼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의 결과가 미칠 영향이 나에게만 있지 않지 않는 경우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나의 선택이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는 상황이 더 많아졌다. 아이를 낳고 나면 지금보다도 더할 것이다.


퇴사는 경제적 수입하고도 직결된 문제이므로, 만약 본인의 수입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쓰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고려해야 하는 대상의 폭이 넓어진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퇴사를 주저하거나 포기한다. 어떤 선택이든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선택이지만 그만두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 자체만으로는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조언은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는 정도에 따라 제 각기 다르다. 참아서 만족하는 사람은 참고 견디면 길이 보인다 할 것이고 참지 않고 나가서 만족하는 사람은 벗어나야 길이 보인다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도 반대의 길을 갔다면 오히려 더 만족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택의 '자기 지분율'


선택만으로는 결과를 알 수 없고, 개인의 어떤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선택에 얼마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현재의 직장 생활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퇴사를 고려했지만 부양해야 하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당장의 불확실한 수입을 감당할 수 없어서 퇴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러한 선택은 상황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강요된 것인가 그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나의 선택인가 하는 것이다. 선택은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어떤 선택이든 자기 지분이 너무 적거나 없으면 이후의 과정이 더욱 고달프게 느껴질 수 있다. 나의 선택에서 정작 내가 배제되었는데, 이후의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 것은 결국 본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와 양보, 희생도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퇴사처럼 무거운 선택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우리 선택에서 자신을 배제해왔는지도 모른다. 그 또한 반복되면 습관처럼 되어버려서, 어느 순간 선택의 중심에 나를 놓는 것이 어색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따를 수 있다. 내 의지가 100% 반영된 선택이라도 후회의 가능성을 비껴갈 수는 없다. 다만 선택의 중심에 내가 없을 경우에는 따르는 후회가 더 클 뿐 아니라 후회를 넘어서는 원망이 다른 사람을 향할 수도 있다. 내가 베푼 배려와 희생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래도 덜 서운하려면 선택의 중심에 나를 세워놓아야 한다.


퇴사를 앞에 놓고 두 달을 넘게 고민했다. 아내는 일찌감치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겠노라 말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미안한 일이 많은데 무책임한 남편까지 되는 것은 아닌지,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 내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까지 생각하다 보니 결론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꾸역꾸역 하루를 견뎌 한 줌 연료를 채워 내일을 지탱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퇴사를 선택했다


고민의 시간을 끝내고 막상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차피 무엇을 선택하든 과정은 험난할 텐데, 이왕이면 힘든 와중에도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야 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이라 믿었다. 다른 이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길을 갈 수도 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 보다 중요한 건 그 선택에 자신을 얼마나 쏟았는가에 있다고 또 믿는다.


퇴사를 2주 앞둔 어느 날 나의 퇴사 소식을 접한 타 부서 팀장님이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다 하신 말씀은 “내가 보기에 회사 생활은 버티는 거야”였다.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하신 말씀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팀장님께는 버텨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몰라도, 제게는 버틸 필요가 없었어요. 버티지 못한 게 아니라, 버틸 필요가 없는 길을 선택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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