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

맞는 말이어도 괜찮아

by 홀짝
‘사람 쉽게 안 변한다’


지금껏 살면서 누가 이 말을 좋은 뜻으로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칭찬도 아니고 욕도 아닌데 쓰임새는 늘 부정적으로 치우친다.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를 두고 그에게 개선의 여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예언으로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을 한다. 앞에 ‘두고 봐’를 붙이면서. 그러다 당사자가 정말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했을 때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거 봐, 사람 쉽게 안 변한다니까”


이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기분이 든다. 폭력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날 때부터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구별되는 것도 아닐진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영 마뜩잖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도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 이 말이 상처될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나를 발견할 때는 더 그렇다. 주변에서 이런 말이 들리면 그 말의 대상이 내가 아닌 것을 아는데도 나도 모르게 자석처럼 그걸 끌어당겨 기어이 제 가슴팍에 꽂아 넣고는 몸서리친다. 그동안 벗어나려 애쓰고 애써 어쩌면 이 굴레에서 내가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싹이 흔적조차 사라지고 만다. 이쯤 되면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은 나를 영영 속박하는 저주의 주문으로 들린다. 내가 이 말을 싫어했던 건 바로 그런 자격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정하고 싶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사람, 참 쉽게 변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데리고 살아온 나 자신을 보자니 아니라고 딱 잡아뗄 수가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어떻게든 데리고 살아야 한다. 나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적어도 살아 있는 한, 데리고 살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데 쓰임새가 늘 부정적이라는 것은 이 말을 뱉는 사람에게 애초부터 비난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있는 사람은 대상을 넓게 보거나 다른 측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간의 편협함이 반드시 깔려 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그토록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비난한다. 타인을 대할 때보다 더 잔인해지기도 한다. 나를 향한 것도 아닌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에 움츠러든 나는, 가장 편협한 시각으로 나를 비난하는 존재였다.


넓은 관점과 시야는 남을 바라볼 때만 가져야 할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을 때일수록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는 경우나 해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반복하는 경우 정도를 제외하면, 좋고 나쁨이란 그 경계조차 모호하다는 것도 생각해내야 한다.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 판단이 지극히 자의적이라는 것도. 사람과 상황, 환경에 따라 좋고 나쁨의 판단도 다를 수 있고, 좋고 나쁨의 정도도 다를 수 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나쁜 모습도 쉽게 안 변하지만 썩 괜찮은 모습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뻔한 소리지만 세상에 흠 없고 완전한 사람은 없다. 더 나아지기 위한 반성도 좋고 객관적 자아비판도 좋다. 하지만 균형을 잃고 나를 무너뜨리는 반성과 비판은 비난과 저주다. 쉽게 변하지 않는 나의 어두운 모습 이면에는 내가 외면했던 빛나는 모습이 숨어있다.


자신에게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만 유독 엄격한 사람이 있듯이 타인에게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만 엄격한 사람도 분명 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런 ‘때’가 분명 있다. 나를 데리고 살기 힘든 사람, 나를 데리고 살기 힘든 때에는 나를 향한 관대함이 조금 더 필요하다. 변하지 않는 아흔아홉 개의 흠보다는 변치 않고 빛나는 하나의 좋은 점을 주목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쉽게 안 변한다는 거지 아예 안 변한다는 것은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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