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짝 Dec 18. 2019

이별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수납장 하나 하고 24인치 캐리어요"


"수납장은 몇 단짜리인가요?"


"음... 서랍 칸으로 되어 있는 장이 아니라서. 한 3단쯤 되는 크기일 거예요"


"수납장 3천 원, 캐리어 2천 원 해서 5천 원입니다"


주민센터에서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샀을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은 없었다. 그저 주민센터가 사는 집 코앞에 있어서 참 편하구나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고이 붙인 캐리어와 수납장을 놓고 돌아설 때, 휑한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수납장과 캐리어를 보면서 순간 마음이 휘청였다. 누군가와 영영 헤어지는 기분이랄까. 정든 물건을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몰아낸 죄책감마저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멈추지도 않은 채 사진을 찍자마자 휴대폰을 곧장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 걷는 내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의 연결 동작으로 순식간이었던 것 같다. 미안함은 사람을 이리도 황급하게 만드는구나.


그 캐리어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아내의 여행에 가장 오랜 파트너였다. 6년 전, 아내는 유럽 여행 준비를 하면서 이 캐리어를 처음 만났다. 나를 알기도 전이었다. 결혼 전 아내와 사귀던 시절 방콕 여행에 동행한 것도, 나 홀로 방콕을 다시 찾았을 때도 옆에는 늘 이 녀석이었다. 내가 함께 하지 못한 아내의 여행에, 아내가 함께 하지 못한 나의 여행에 빠지지 않고 늘 따라나섰던 것은 검은색 24인치 캐리어였다. 2년 전 캐나다 신혼여행도 어김없이, 최근 아내가 장모님과 단둘이 치앙마이에 다녀왔을 때에도 어김없이.


캐리어 안에 그동안 참 많은 설렘을 담았다. 여행지에서 돌아올 때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고마운 마음과 여행을 마치는 아쉬운 마음도 한가득 담았다. 비행기에 탈 때 잠시 떨어져 있다가 목적지에 내리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목을 길게 빼고 오매불망 내 캐리어가 움직이는 벨트 저 끝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잘 알아보려고 손잡이에 묶어 놓은 손수건을 발견했을 때의 그 반가움이란.


하지만 그런 동행은 아내의 최근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위탁 수하물 이동 과정에서 바퀴 한쪽이 부러져버렸다. 항공사는 비슷한 사이즈의 새 캐리어로 보상을 해줬으니 책임을 다했고, 우리 부부는 앞으로 그걸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큰 손해는 아니다. 처지가 급변한 것은 오로지 6년의 여행 끝에 다리가 부러진 24인치 검은색, 이 캐리어 하나뿐.


수납장은 수납장 나름대로 4년 반을 함께 살았다. 이전 살던 집 구조에 맞추어 산 것인데 4년 전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어울림도 쓰임새도 영 맞지가 않았다. 그래도 참고 여태 써왔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던 이유는, 그 사이 수납해야 할 물건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 연고로 캐리어와 수납장은 이제 더 이상 캐리어와 수납장이 아닌 '대형폐기물'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의미 부여하다가는 평생 정리는 못하고 사는 거야"


얼마 전 누나는 집 정리에 애를 먹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쓸모없는 것, 안 쓰는 물건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하는 거란다. 그 말에 틀린 구석이 없어 딱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미부여를 하지 말라니. 사소한 거 하나까지 의미부여를 해야 글을 쓸 거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의미부여가 내 일인데 그걸 하지 말라는 건 좀.


하지만 곱씹어도 맞는 말이다. 넓지도 않은 집 안에 모든 걸 다 안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걸 다 안고 사느라 정작 살고 있는 사람이 힘들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대형폐기물 신세가 된 캐리어와 수납장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해도 이별은 불가피했다. 불가피하다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것. 어쩔 수 없다는 의미.


그렇구나. 이별은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었구나. 이별하고 말고를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다 안고 살 수는 없어서, 이별하지 않고 안고 사느라 내가 더 이상 힘들어질 수는 없어서 하는 것이구나.




넓지도 않은 내 가슴 안에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인연을 다 안고 살 수는 없었다. 사이가 틀어져서, 관계가 고장 나서 순식간에 정리된 인연과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간 사람들,  그중에서는 멀어져 가는 모습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떠나보낸 사람도 있었고 점점 멀어져 가는 걸 보며 애석해하면서도 굳이 붙잡지는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


작년 여름 무렵, 순식간에 연락이 끊긴 사람이 있다. 그전까지 몇 년을 꽤나 자주 보고 연락해왔던 이가 어찌 된 일인지 어느 순간부터 내 모든 연락에 대한 응답을 끊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걱정되었고 그다음에는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그에게서 내가 정리된 모양이었다. 며칠 전 다른 사람에게서 그의 소식을 듣자 마음이 다시 어지러웠다. 지난 1년 간은 그 사람이 문득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에게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겠지. 그 어쩔 수 없음의 이유가 그에게 있는지 나에게 있는지도 이제는 그만 궁금해해야겠다. 이제는 나도 정리를 해야겠다. 




마음 저리지만 피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나의 모든 이별 앞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렇게 아쉬운 걸 보면 함께 한 시간들은 대체로 다 좋았던 것 같다고. 그래서 고마웠다고. 기억해낼 수 있는 한 잊지는 않아보겠다고. 마음이 얼마나 저리든 아프든 이별에 따르는 대가는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어느 날 중고나라를 나오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