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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짝 Oct 10. 2021

뜯어보기 전에는 속을 모른다. 집도 그렇다

인알못의 인테리어 턴키 시공기 10


이웃 양해 선물 준비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는 주변 이웃들을 여러모로 피곤하게 한다. 가까운 집일수록 진동과 소음이 심하고, 공사 기간 내내 엘리베이터로 여러 자재를 싣고 나르기 때문에 자칫 불편을 겪을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 벽을 보양재로 두르고 있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그래서 공사 시작 전에는 필히 관리사무소에 신고를 하고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구축 아파트일수록 인테리어 공사가 남의 일만은 아니고 언젠가 내 집에도 필요한 날이 올 수 있기에 비교적 양해를 구하기 쉽다지만 어디까지나 통상적으로 그렇단 말이다. 내 주변에 늘 통상적인 일만 일어나고 통상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은가.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다. 코로나 이전보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같은 공사를 하더라도 피로감의 깊이와 범위가 예전과 다르다.


셀프 인테리어였다면 직접 동의서를 받으며 온 집을 돌아야겠지만 턴키 시공을 하면 업체가 맡아서 해준다. 대신 의뢰인은 준비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이웃 주민들에게 소소하게나마 양해 선물을 돌린다. 


2호 라인에 입주하는 나는 1층부터 15층 꼭대기까지 1, 2호 집들에 선물을 돌렸다. 20리터 쓰레기봉투 두 장과 마스크 두 장을 선물용 비닐봉지에 담고 주민들께 인사와 함께 양해를 구하는 짤막한 글을 인쇄한 스티커를 붙였다. 아파트 잔금을 치렀던 날,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계단을 내려가며 집집마다 문고리에 선물을 담은 봉투를 걸었다. 특히나 피해가 심할 양 옆집(3호 포함)과 바로 윗집, 아랫집에는 좀 더 신경 쓴 선물을 준비하고 직접 전달했다. ‘뭘 이런 것까지 다 준비했냐’며 괜찮다는 반응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만난 이웃분들 또한 감사하게도 그래 주셨다.


간혹 인테리어 공사 소음에 대한 민원을 넘어서 정신적 피해를 금전으로 보상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이웃에 대한 성토 글이 도시 괴담처럼 인터넷 공간을 떠돌기도 하지만 이건 예측 불가능의 영역이므로 미리부터 잔뜩 쫄 필요는 없겠다. (공사 소음에 대한 민원 제기를 가지고 뭐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입주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이런 소소한 양해 선물 돌리고 인사한다고 해서 제기될 민원이 없어진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감정이 이성을 움직이기도 하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도 하는 것이니 서로 안면 트고 말이라도 한 마디 더 주고받고 진심으로 양해를 구하기도 하면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꼭 그런 걸 바라지 않더라도 그렇다. 예전에는 새로 이사 온 주민이 동네에 떡도 돌렸다는데 가볍게 입주 인사 한 번 도는 일에 뭘 그리 대단한 걸 바랄 이유도 없다. 


1주 차 


인테리어 공사 신고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보양재를 입히면서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 현장(우리 집)이 10층에 있는 까닭으로 각종 자재와 도구, 폐기물을 엘리베이터에 태워 수시로 날라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다치지 않도록 보양재로 벽면을 두르는 작업이 필수다.  


공사 첫 주 일정은 대부분 철거작업으로 채워진다. 샤시 포함 바닥, 벽면, 천장에 문틀과 문짝, 욕실 타일과 싱크대까지 싹 뜯어내는 내 경우에는 그만큼 철거 작업과 버려야 할 폐기물의 양이 많다. 작업 양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인건비가 많이 든다는 거고, 폐기물 처리비용도 비례해서 든다. 많이 뜯어고치면 새로 만드는 돈만 많이 드는 게 아니라 뜯고 버리는 돈도 많이 든단 얘기다. 


뜯고 버리는 일도 다 비용이다


이 시기에 나는 가스 배관 철거 신청을 했다. 가스레인지 자리에 인덕션을 놓고 쓸 거라 주방 벽에 설치되어 있는 도시가스 배관을 철거하고 가스가 세어 나오지 않도록 막아놓는 조치가 필요하다. 작업 후에는 관련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가스 누출 여부를 검사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작업과 검사를 통으로 맡아서 해주는 사설 업체들이 있다. 20만 원 들여 가스관 철거를 완료했다. 


철거 현장에서 인테리어 업체 팀장님을 만나 벽면에 콘센트 위치를 바꾸거나 콘센트를 추가할 곳을 일러주었다. 거실과 주방, 발코니, 욕실과 각 방마다 사용할 전기제품이 무엇인지, 어느 곳에 두고 쓸 것인지 미리 정해두어야 콘센트가 가구에 가려져 있거나 치렁치렁 연장선을 달고 나온 멀티탭이 다된 인테리어에 재 뿌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 중에 전력 소모가 많은 품목이 무엇인지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다. 에어컨, 건조기, 인덕션, 식기세척기 등의 사용 여부와 위치는 인테리어 업체에 미리 공유하자. 특히나 인덕션은 소비 전력량에 따라 추가 전기 공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특히 수입 인덕션은 소비 전력이 크니까 반드시 체크할 것.  


2주 차 


다 뜯어내고 나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고 붙이는 일이다. 2주 차 주요 작업은 샤시와 목공이다. 샤시는 모르는 분이 없을 거고 목공은 벽과 천장의 도배(혹은 도장) 전 사전 작업과 몰딩, 문틀 제작 등을 일컫는다. 아파트의 콘크리트 내벽이 그렇게 반듯하지 않기 때문에 도배 전에 벽면과 천장에 석고보드나 합판을 대어 놓게 되는데 그래야 벽지가 우둘투둘하지 않고 깔끔하게 붙는다. 여기에 천장 조명 구멍을 뚫기도 하고 벽면에는 콘센트 구멍을 내기도 한다. 문선 두께에 맞추어 문틀을 만들고 입주자의 요청에 따라 가벽을 설치하는 것도 목공의 일이다. 안방 벽 한쪽에 침대 헤드 제작을 의뢰해서 목공 작업이 하나 추가됐다. 


목공으로 만든 싱크대 가벽과 맞은편 냉장고 가벽


인알못들이 견적을 낼 때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목공이다. 나 또한 도배며 마루, 문선처럼 ‘눈에 보이는’ 요소들만 따졌지 목공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실상 목공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요소들을 구현하기 위한 밑 작업이자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품이 많이 드는 건 뭐다?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이라는 걸 이젠 다 아실 게다. 무문선, 무몰딩은 있는 걸 없게 만드는 건데 왜 돈이 많이 드냐고? 그걸 구현하기 위한 목공 작업의 품과 인부의 숙련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도시가스 회사에 연락해 가스 전입을 신청했다. 여름이 코앞인데 왜 그리 서둘렀냐면, 보일러를 돌려 필름과 도배지의 양생을 돕고 인테리어 공사 막판 베이크드 아웃(실내 온도를 높여 자재에 있는 포름알데히드를 빠르게 방출시키고 환기하는 작업. 새집증후군 예방에 도움이 된다)을 하기 위함이다.  


인터넷 이전 설치와 기사님 방문을 요청한 것도 이쯤이었다. 아직 이전 설치까지는 시간이 몇 주 더 남았지만 콘센트 작업 전 기사님이 오셔서 랜선 위치를 알려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 인테리어 공사라 내 입장에서는 모든 게 낯설었지만 흔히 있는 일인 듯했다.  


2주 차 초반에는 집에서 쓸 빌트인 가전이 무엇이고 어떤 모델인지를 인테리어 업체에 공유해주었다. 인덕션, 식기세척기가 대표적인데 싱크대와 주방 가구 제작, 주방 콘센트 설치에 필요한 정보다. 


3주 차 


2주 차까지는 외형상 딱히 뭐가 달라진 느낌을 받기 어렵다. 다 뜯어낸 뼈다구 집 안에 나무틀 정도나 덧대어진 느낌이랄까. 샤시를 달긴 했는데 이때까지는 손잡이도 달아 놓지 않고 있어서 ‘새집’을 실감하기 어렵다.  

그나마 3주 차에 타일 작업에 들어가고 나면 욕실이나 주방 싱크대 자리, 현관과 발코니에 새 타일이 붙으면서 새 옷을 입는 티가 나기 시작한다. 3주 차 막판에는 세면대나 욕조, 위생도기(변기)가 설치되고 욕실 액세서리(휴지걸이, 수건걸이)가 달리면서 욕실 한정 제법 완성도가 생긴다. 욕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아직 택도 없이 멀긴 했다. 


‘알아서 달아주세요’ 했다가 나중에 후회 말고 직접 위치를 정해드리는 게 좋다


3주 차 중반에는 현장에서 직접 욕실 액세서리 설치 높이나 위치를 정하고 각 방과 거실, 주방 공간에 어떻게 조명을 설치할지 조명 기사님과 의논하며 확정했다. 안방과 아이방의 메인 등을 제외하고 모든 공간의 조명을 매립등(다운라이트)으로 하려다 보니 몇 개의 매립등을 어느 위치에 설치할 것인지를 세세하게 정해야 했다. 나는 인알못이자 조(명)알못이므로 실현 가능성과 실생활 만족도에 대한 가늠의 상당 부분을 조명 기사님께 의지했다.  


다운라이트 설치에서 고려해야 할 대략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송송 뚫려 있는 천장 구멍이 입주자의 눈에 거슬리지 않겠는가. 어떻게 조명을 배치해야 덜 거슬리고 제 눈에 예뻐 보이겠는가. 얼마나 밝거나 혹은 어둡겠는가. 사람이 자는 방에서는 누웠을 때 눈뽕을 맞히지 않겠는가. 밝고 쨍한 주광색인가 비교적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주백색인가. 넓게 밝히는 확산형인가 좁은 영역을 향해 빛을 ‘쏘는’ 집중형인가. 


조명과 관련해서는 이것 말고도 풀어놓을 썰이 한 무더기지만 생략하고 넘어가자. 조명에 IOT를 접목해서 ‘헤이 구글 거실에 불 켜줘’를 구현하는 이도 있고 특정 위치에 펜던트 조명을 떨어뜨리거나 레일 조명, 라인 조명을 설치하는 사람도 있다. 어지간한 요청 사항은 견적 낼 때 미리 이야기만 하면 불가능할 게 없다.   


뜯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내 집도 마찬가지다. 


이거 뭐야, 막상 공사 시작하고 난 이야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시시하고 평탄한가? 본편의 진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사람 겉 다르고 속 다르듯 집도 마찬가지다. 겉만 보고 이러이러하게 공사하면 요러요러하게 모양이 나오고 그럼 얼마의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겠구나 한다고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인테리어 공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돌발 상황은 막상 뜯어본 집의 진짜 모습 때문에 발생하는 거였다. 그 외 다른 문제는 사람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3주 사이 발생한 크고 작은 돌발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확장되어 있던 방의 단열이 엉망이었다 


아파트 10층에 남향이라 채광이 괜찮은 집이다. 그런데 확장된 방의 창쪽 벽과 안쪽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길게 곰팡이가 나 있었다. 전에 살던 분들이 집을 비우고 나서야 발견됐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미리 알았어도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겠지만. 


거실이든 방이든 발코니 부분을 터서 방을 넓히면 확장 영역 바닥에 보일러 배관도 깔고 외창을 이중창으로 바꾼다. 단창이 이중창으로 바뀌니 가벽을 만들어 두께를 만드는데, 여기에도 단열재를 넣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걸 잘못하면 확장된 부분이 겨울에 냉골이 되고 한기가 돈다. 단열이 미흡하면 안팎의 온도차로 인한 결로 현상으로 벽지에 습기가 차고, 이렇게 곰팡이가 창궐한다. 


곰팡이 군락의 평화로운 모습


그렇다. 어느 업체에 얼마를 주고 확장 공사를 맡기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이 방의 단열 상태는 완전히 엉망이었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타난 내 앞에서 인테리어 업체 팀장님은 확장된 방 가벽을 망치로 냅다 후렸다. 드러난 구멍 안으로 어느 면에 붙지도 못한 채로 대충 기대어져 있는 스티로폼이 눈에 들어왔다.     




“와...”하는 팀장님의 탄식 뒤에 무슨 말이 생략되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 바다. 


‘단열을 X같이 했구나’ 


이건 빼박 단열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도배를 다시 한들 또 곰팡이 창궐이다. 예정에 없던 단열 작업이 추가됐다. 자재와 품이 추가되었으니 당연히 추가금이 발행한다. 이건 인테리어 업체 탓을 할 수도, 전에 살던 집주인을 탓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업체가 눈탱이를 치지 않아도 이렇게 추가금이 발생할 수 있다, 는 사실을 굳이 내가 직접 겪을 필요는 없는데...


2. 거실 천장 간접등을 포기했다 


이사할 집 천장은 우물천장이었다. 천장 가운데 면이 바깥 면보다 움푹 들어가 있는 형태란 얘기다. 가운데 실링팬을 달고 바깥 천장과 안 천장의 높이 차가 발생하는 면 안쪽으로 조명을 쏴서 간접등을 만들 계획이었다. 


이렇게 하려고 했으나



그런데 뜯어보니 불가능이었다. 안쪽 천장에 목공 작업으로 뭐가 덧대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시멘트였다. 간접등을 만들자고 굳이 천장 높이를 낮추어가면서까지 단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돌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친절하게 나의 의사를 묻는 인테리어 팀장님의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는 말이 참 얄궂다. 그분 나름대로 최대한 상세히 설명하고 선택 가능한 옵션을 제공한 뒤에 나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는 최선의 액션을 취한 것이고, 나 또한 이해하고 감사한 일이지만 우예뜬 얄궂다.   


3. 마루를 뜯어보니 마루가 나왔다 


철거 3일 차였던가, 오전부터 팀장님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마루를 철거한 바닥면인 것 같은데 놀랍게도 뜯어낸 마루 밑에 또 마루가 있었다. 


“마루 철거 작업을 한 번 더하게 됐습니다” 


일이 늘었다. 폐기물도 늘었다. 고로 비용이 더 든다는 말. 이유는 모르겠는데 방에 깔린 마루는 뜯어보니 한지가 바닥에 대어져 있더란다. 여러모로 일이 귀찮게 되었나 보다.   


4. 변기 배관 위치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조적 젠다이라는 게 있다. 이 시국에 일본말이라 죄송한데 인테리어 용어도 공사 현장의 언어라 일제의 잔재가 꽤나 두텁다. 암튼 인테리어에 조금 관심 있는 분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게 젠다이인데, 욕실 벽면에 좁은 선반처럼 달려 있어 그 위에 욕실용품을 놓고 쓸 수 있게 하는 걸 젠다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벽면에 벽돌을 쌓고 겉에 타일을 둘로 만든 걸 조적 젠다이라 부른다.  


당초 계획은 변기 쪽 벽면부터 욕조 끝의 벽면까지 한 면을 조적 젠다이로 쭉 연결하는 거였는데, 어느 날 오전에 팀장님이 카톡으로 욕실 사진을 보내왔다. (이쯤부터는 팀장님 연락이 슬슬 무서워졌다) 요즘 아파트들은 변기 배관이 벽면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 변기 뒤쪽으로도 조적 벽을 쌓을 수가 있는데 공사 현장이 구축 아파트다 보니 변기 배관이 벽면 너무 가까이에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이게 뭘 의미하는지 대번에 알아채면 내가 인알못이 아니다. 


“그… 그게 뭘 의미하는 건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변기 뒤로 조적 벽을 쌓을 수 없으므로 변기 쪽은 조적 젠다이를 연결하지 않던가 벽에 붙은 변기 위로 벽돌 한 장 정도로만 젠다이를 연결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공사 시작 전의 디자인 시안이 변경될 일이나 대세에 지장 없다는 판단 하에 그냥 변기 위로 젠다이가 지나가도록 작업을 요청했다.  


바닥의 변기 배관이 벽에 너무 가까이 있는 관계로  조적 벽을 다 채울 수 없었다


5. 보일러 분배기에 식기세척기가 밀려났다 


싱크대를 뜯어놓고 보니 한가운데에 보일러 분배기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싱크대 중앙 하부에 식기세척기를 설치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각이 안 나온다고 한다. 


보무당당한 보일러 분배기의 자태


졸지에 갈 곳 잃은 식기세척기가 갈 만한 곳은 현실적으로 오른쪽 끝에 있는 인덕션 아래뿐이었다. 인덕션 바로 아래에 식기세척기를 두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던데 난감한 일이다. 검색창에 ‘인덕션 아’까지만 쳤는데 ‘인덕션 아래 식기세척기’가 자동 완성에 뜬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선배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선배들의 발자취


식기세척기에서 나오는 스팀이 인덕션에 바로 들어가면 고장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인덕션 아래 식기세척기를 설치할 때는 띄움 시공을 해서 인덕션이 싱크대 상판 위에 돌출되도록 설치해야 한단다. 그조차도 일부 가전 업체에서는 설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는 후기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싱크대 하부장을 제작할 때 목재로 인덕션 자리와 식기세척기 자리를 아예 막아놓는다’는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 말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을 놨다. “그렇게 해드린 집이 한두 곳이 아니에요”라는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6. 안방 욕실과 주방 타일을 다시 뜯어낸 이유 


타일 작업이 막 시작된 3주 차 초반에 현장을 둘러봤다. (지금 사는 곳과 거리가 멀어 1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안방 욕실과 주방 타일이 붙어 있는 현장에서 뭔가 이상 야릇하고, 애매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질감이 느껴졌다. 새 타일이 붙어서 깔끔하긴 한데 내가 생각했던 그 느낌이 아니었다. 아직 마감이 다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부터 팀장님 연락이 왔다. 어제 느낀 이질감의 정체가 한 방에 풀렸다.   


위와 아래의 차이가 이질감의 정체


애초에 안방 욕실과 주방에 사용하기로 한 타일은 무광의 흰색 타일이었다. 현장에서 내가 묘한 이질감과 실망감을 느꼈던 건 붙여진 타일에서 광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럼 왜 무광 타일이 아니라 유광 타일이 붙었던 걸까? 알고 보니 타일 업체에서 기존에 공급하던 무광 타일 스펙을 변경해 반광을 넣은 게 문제였다. 무광 타일이 스크레치와 오염에 취약하다는 클레임이 많아 이를 보완하고자 최근 생산 물량부터 반광을 넣어 공급했다고 한다. 그래 놓고, 타일을 공급받는 인테리어 업체에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거다. 


무광 타일을 주문한 인테리어 업체는 타일을 붙여 놓고 나와 비슷한 이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현장에 온 업체 사장님이 그걸 보고 갸웃갸웃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타일 업체에 직접 묻고서야 의문을 해결한 거고.  


다행히 무광 타일의 이전 생산 물량이 남아 있어 타일을 뜯고 다시 바르는 선에서 문제가 해결됐다. 물론 추가금은 들지 않았다.(내 잘못이 아니니까)   


아직 3주가 남았다 


“이제부터 발생 가능한 변수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돌발 상황 가운데 몇 가지가 발생했을 때 조심스럽게 인테리어 팀장님께 여쭤봤다. 마음의 준비라도 하면 조금 덜 당황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철거가 끝났고, 샤시도 교체했고, 목공으로 밑 작업도 마쳤으니 중대한 문제가 갑자기 생길 가능성이 초반보다는 확실히 덜 할 것이다. 4주 차 초반에 있을 필름 작업은 이미 완료한 목공 작업 위에 붙이는 일이라 변수가 적고 그 뒤로는 발코니 벽면 탄성 작업(페인트), 전기 공사가 기다리고 있다. 5주 차에 도배와 조명 설치, 마루 작업이 있고 마지막 주에 붙박이장, 싱크대와 같은 가구를 설치하고 현관 중문을 달면 인테리어 공사는 끝이다. 


허나 앞으로의 일정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뜯어보기 전에는 몰랐던 문제에 맞닥뜨릴 가능성이야 현저히 낮아졌지만 돌발 상황이 꼭 그런 이유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건 타일 교체로 이미 경험했잖은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전설의 야구 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말이다. 요기 베라가 야구 말고 인테리어업을 했어도 같은 말을 남겼을 것 같다.  


※덧붙임 


변기 배관이 어떻고 보일러 분배기 위치가 어떻고 해서 당초 계획한 대로 시공하지 못한 것은 그것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을 무한정 쓸 수 있다면 그 이상인들 못할 리가 없다. 허나 식세기를 반드시 싱크대 중앙에 놓겠다고 바닥을 까뒤집어 분배기 위치를 옮길 수는 없다. 욕실 바닥을 뜯고 변기 배관을 꺼내서 고작 십여 센티 밖으로 빼는 것보다야 조적 디자인을 바꾸는 게 경제성 면에서는 합리적이다.  


본인이 제아무리 성실하고 양심적인 업체를 골라 계약했다 하더라도 얼마 간의 여유 예산을 확보해두길 바란다. 업체의 양심과는 별개로 추가금이 발생할 변수는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그 변수에는 당신의 변덕까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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