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알못의 인테리어 턴키 시공기 11
5월 하순에 시작한 공사는 6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일정의 반 이상을 소화했다. 뜯고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이 지나 지금부터는 붙이고 바르고 입히는 작업 위주다.
4주 차 - 필름과 탄성, 전기
생짜 인알못이라면 인테리어 공사에서 ‘필름’이라고 했을 때 그게 뭔지 확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뭔가 붙이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잘 때려 맞춘 거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필름 작업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시트지 같은 걸 붙이는 거다. 어디에 붙이냐면 문짝, 문틀, 샤시와 창틀, 제작 가구(붙박이장, 침대 헤드, 싱크대 수납장)에 걸레받이와 현관문도 필름 작업 대상이다. 도배와 마루, 타일을 제외하면 인테리어 공사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거의 모든 '면'은 필름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창과 거울 제외)
필름 작업이 ‘생각보다 광범위한’ 이유는 우리가 흔히 페인트칠(도장)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부분을 필름이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칠하지 않고 붙이느냐. 일단 페인트칠이라는 게 깔끔하게 잘하기 무척 어려운 작업이다.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하기에 비용도 많이 드는데, 살면서 관리하기도 어렵다.
반면 필름은 페인트처럼 작업하다 어디 튈 염려를 할 필요도, 고른 두께로 칠하기 위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작업 중간중간 마르길 기다리고 다시 칠하고 하는 번거로운 과정도 없다. 살면서 뭘 묻혀도 여간해서는 한 번에 얼룩이 남거나 하지는 않고 대부분 쓱 닦아내면 그만이다. 색상과 디자인도 다양해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것 또한 장점이다.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덜 어렵고 관리가 쉽다는 것이지 필름 작업이 날로 먹고 돈 안 드는 일은 아니다. 필요한 면적만큼 잘 잘라서, 면은 울지 않고 모서리는 깔끔하게 붙이는 일은 꽤나 숙련된 솜씨가 필요한 작업이다. 필름도 어느 회사의 무슨 제품을 쓰느냐에 따라 가격 차가 상당하니 얕보면 곤란하다. 인테리어 공사의 모든 요소가 다 그렇지만 특히나 도배, 필름, 도장 작업은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4주 차에는 탄성 작업도 있다. 거실 발코니와 주방 발코니 벽면을 칠하는 작업인데 수성 페인트로 칠하면 그냥 도장 작업이고 탄성 코트라는 도료를 바르면 흔히들 탄성 작업이라고 부른다.(엄밀히 따지면 뭘 바르든 넓은 의미에서는 도장 작업이다)
집을 오래 쓰다 보면 벽면의 색이 바래고 오염되기 마련이니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김에 다시 칠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이게 단순히 보기에 좋으라고만 하는 작업이 아니다. 아파트 발코니는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 사이의 중간 지대이므로 온도차가 커서 결로에 취약하다(아파트 외벽의 단열 기능이 후지다면 더욱). 여기에 채광 정도나 잦은 환기 여부 등 집집마다의 조건이 결합하면 어떤 집은 사람이 살기 좋은 집이 되지만 또 다른 어떤 집은 ‘곰팡이들의 이 편한 세상, 곰팡이들의 뉴타운’이 되기 딱 좋다.
그래서 발코니 벽면에 ‘탄성 코트’라는 걸 시공한다. 수성페인트 대신 고무처럼 탄성이 있는 특수 도료를 발코니 벽면에 코팅하듯 발라주면 단열 효과를 내면서 벽 곰팡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럼 탄성 코트 하면 발코니 벽에 곰팡이 피는 꼴은 영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 하면 물론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할리가. 예를 들어 발코니 벽면에 곰팡이가 발생할 환경 조건이 0에서 100까지 있다고 치자. 만약 수성 페인트가 칠해진 곳에서는 30~40부터 곰팡이가 슬슬 나타난다면 탄성 코트를 시공한 곳에서는 60~70까지 전혀 곰팡이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이보다 더한 악조건이 주어졌을 경우다. 일단 탄성 코트라는 방어막을 뚫고 곰팡이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일은 이쪽이 훨씬 더 커진다. 일부에서만 곰팡이가 발생해도 주변 벽면까지 탄성이 들뜨고 일어나 시공 자체를 싹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요런 탄성 코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게 세라믹 탄성코트다. 뭐든 세라믹이라는 말이 붙으면 돌가루를 떠올리면 된다. 세라믹 탄성 코트는 돌가루가 들어간 탄성 도료라서 통기성이 좋기 때문에 곰팡이 방지에 좀 더 효과적이고 벽에 더 찰싹 잘 붙는단다. 암튼 이것도 임계점을 넘어서면 일이 커지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나마 이쪽이 요즘 선택 가능한 옵션 중에서는 가장 잘 쓰인다. 우리 집 단열과 채광 조건이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악조건이 아니라면 세라믹 탄성 코트와 적절한 환기 습관의 조합으로 충분하다.
4주 차 마지막은 전기 작업이다. 거실벽 중앙 콘센트는 벽걸이 TV로 가리기 위해 위치를 조정했다. 각 방 콘센트는 대부분 콘크리트 벽에 박혀 있어 위치를 바꾸자니 일이 커질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전기를 많이 먹는 인덕션은 전용 선을 따로 빼는 등 미리 일러드린 전기 제품 사용 품목과 위치를 고려해 전기 공사를 진행했을 것이라 믿는다.
5주 차 - 도배와 마루, 조명
인테리어 공사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작업은 첫째가 도배, 그다음이 마루(또는 장판)다. 그래서 인테리어 공사를 최소한으로 줄이면 도배하고 장판만 남는다.
도배는 특히나 작업 면적이 넓고 사람 손을 많이 타는 작업이라 신경을 많이들 쓴다. 제아무리 무던한 사람이라도 도배지가 끝나는 문선, 걸레받이, 몰딩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물의 차이가 뚜렷하다. 특히나 평균 이하의 수준이라면 차이는 더욱 확연하다. 벽면 어느 곳에라도 도배지가 조금이라도 울어 있다면 이사 와서 사는 동안 그걸 볼 때마다 내 가슴도 같이 운다. 유독 그런 부분만 눈에 더 잘 띄는 건 덤이다.
4주 차에 있었던 필름 작업도 그렇고 공사 중에는 딱히 내가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하루 종일 현장에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데다 지금 사는 곳과 거리가 멀어 자주 가지도 못했으니 더욱 그랬다. 도배 작업이 예정되어 있는 3일 중 가운데 날에 한 번 현장을 찾았는데 그냥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나왔다.
같은 주에 있었던 마루 작업은 시공 과정을 아예 보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인테리어 공사 대부분의 작업이 대부분 그랬다. 내가 뭘 좀 알고 있고 현장을 자주 찾을 여건이 되고 그런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면 내가 셀프 인테리어를 했지 턴키 공사를 맡겼을까?
물론 할 수만 있다면 현장은 자주 찾는 게 좋기는 하다. 이왕이면 그 집에 살 사람이 자주 나타나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얼굴도 익히면서 간혹 묻기도 하는 편이 아예 나타나지도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다만 현장을 자주 찾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무슨 대단한 차이가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애초에 내가 인테리어 공사를 턴키 업체에 맡기기로 한 건, 나에게 기초 지식과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공사 시작부터 5주 차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세부 공사를 열거하면 철거, 목공, 타일, 필름, 탄성, 전기, 도배, 조명, 마루다. 턴키를 맡기지 않았다면 나는 각 공사 내역을 맡아줄 업체를 일일이 알아보고 계약을 하고 공사 일정을 계획하여 진행 상황을 확인해야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지식도 시간도 없다.
턴키 업체가 하는 일이 바로 나를 대신해 적당한 업체에 일을 맡기고 전체 공사 일정을 관리하며 현장을 감리하는 것이다. 턴키 업체에 인테리어 공사를 의뢰한 사람이 현장을 자주 찾지 못해 인테리어 공사가 개판이 되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운전면허 없는 사람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택시 안에서 깜빡 잠이 든 사이 사고가 나면 그걸 택시 기사의 운전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승객의 책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인테리어에 대한 기초 지식도 없는 사람이 현장을 찾았는데 거기서 문제를 발견한다면 그건 아무도 몰랐던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은 문제다. 업체가 처음부터 공사를 날림으로 할 마음을 먹거나 약속되지 않은 자재를 써서 공사비를 눈탱이 칠 마음을 먹었다면 단순히 현장을 자주 찾는 것만으로 이걸 막기는 쉽지 않다.
‘우리 같은 인알못들이 자주 가봤자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대책 없이 비관적이고 정 떨어지는 말로 받아들이지는 않기를 바란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 눈탱이를 맞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알못들에게 ‘뭣이 중헌디’라는 물음을 던진 것이라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여전히 뭣이 중헌지 열심히 알아가는 중이다.
자주 갈 수 있는 여건이라면 맘 내키는 대로 들여다봐도 좋다. 내 집 내가 드나드는 걸 누가 뭐라 하겠나. 허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너무 스트레스받거나 무리하지는 말자. 현장을 보고 직접 결정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어차피 1주일에 한 번은 갈 일이 생긴다. 그 기회를 살려 그간의 작업 결과를 살피고 필요한 질문을 하면 충분하다. 역시나 인테리어 카페와 커뮤니티가 큰 도움이 된다. 세부 공사마다 체크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뭘 체크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후회했는지 인알못 선배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6주 차 - 가구와 중문, 마감. 마감. 마감
6주짜리 인테리어 공사의 마지막 주에는 제작 가구와 현관 중문을 설치했다. 기성품 브랜드 가구보다 집 구조에 맞추어 버리는 공간 없이 딱 들어가는 맞춤 가구를 하기로 결정해놓은 터라 4주 차 무렵에 가구 업체가 제공한 시안을 보고 어떻게 레이아웃을 변경할지 머리를 굴렸다. 안방과 아이방 붙박이장, 주방 싱크대 상하부장, 싱크대 맞은편 수납장에 현관 신발장과 거실 발코니 양끝 창고장까지 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해서 꼭 모든 걸 내 맘대로 정할 필요는 없다는 걸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을 뻔했다.
모든 제작 가구 레이아웃을 보며 뭐가 우리에게 ‘맞춤’일까 고민하며 어영부영 시간만 흘려보내다 이러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을 때가 되어서야 결국 붙박이장의 레이아웃은 업체가 제공한 기본 시안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주방 수납장의 레이아웃을 우리 스타일에 맞추어 바꾸는 데 시간과 노력을 집중했다.
가구와 중문 설치가 끝난 건 6주 차 수요일, 목요일까지 마감 작업을 끝내고 금요일에 입주 청소를 하는 일정이라 꽤 빡빡했다.
위에서 던진 ‘뭣이 중헌디’라는 물음에 답이 나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턴키 업체에 인테리어를 맡긴 우리가 공사가 시작된 후 가장 공을 들여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마감이다. 인테리어 업체 선정의 성패는 마감에서 하자 보수(A/S)까지의 시간에서 갈린다.
마감이 시작된 6주 차 목요일에서부터 이사 들어와 살며 경험했던 3~4주의 시간. 집을 제외하고 내 인생 최대의 지출을 기록한 이번 인테리어 공사의 눈탱이 여부가 여기에서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