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알못의 인테리어 턴키 시공기 12
마감
인테리어 공사의 마감은 글쓰기의 퇴고와 같다. 글의 단어와 문장, 단락과 전체 글을 훑어보며 부실한 곳을 다듬고 못난 부분을 좀 더 예쁘게 다듬는 것,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제대로 녹아 있는지 살피고 고치는 것. 인테리어 공사에서는 마감 때 이런 일을 한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충실하게 반영되었는지, 시공이 부실하게 되었거나 맺음새가 못난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보수하는 작업이다.
퇴고가 잘 된 글이 좋은 글이라 한다. 암만 그래도 초고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것인데 그럼에도 이런 말이 있는 이유는 아마도 실수 없이 한 번에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겠다. 사람이 글을 쓰듯 인테리어 공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당연히 모든 작업이 한 번에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이왕이면 최대한 고칠 부분이 덜하게 작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이든 열이든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승자는 실수를 빠짐없이 발견해서 싹 지워 놓는 쪽에 있다.
인테리어 공사의 최종적인 성패는 마감과 하자 보수에서 갈린다. 아주 예외적으로 턴키 업체를 잘못 골랐지만 인테리어 공사는 매우 성공적일 수 있는데 누가 봐도 심한 눈탱이를 맞은 경우다. 당한 사람은 속이 쓰리겠지만 그래도 공사가 망했는데 눈탱이까지 맞은 경우보다는 낫다.
업체가 인테리어 공사를 대하는 태도는 그대로 마감 작업을 대하는 태도로 드러난다. 그래서 턴키 업체를 잘 골랐는지 마감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거다. 인테리어 공사를 그저 최대한 잘 남겨 먹고 욕만 덜먹으면 그만인 정도로 대하는 업체는 딱 그 정도 눈으로 마감을 한다. 이런 업체는 눈에 잘 띄는 굵직한 문제만 발견하고 싫은 소리 안 나올 정도로만 하자 보수를 한다. 살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나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하자, 하자라고 하긴 어렵지만 보기에 썩 매끈하지 않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최우선 목적은 공사 잔금을 받는 것이고, 딱 그때까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발생하는 하자 보수 건은 최대한 시간과 돈을 아껴가며 ‘원래 그런 것’으로 뭉개면 그만이다.
최악은 내일이 없는 업체다. 우리나라에 난립해 있는 인테리어 업체 가운데 태반이 미등록 업체다. 업체의 평판 따위보다 당장 마진을 많이 땡기는 게 중요한 곳, 큰 탈이 날 경우 여차하면 장사 접고 다른 데서 간판 달면 그만인 곳은 잘못 걸리면 진짜 ‘국물’도 없다. 시력만 있으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하자도 이들에게는 ‘원래 그런 것’이거나 의뢰인이 너무 예민하기 때문이다. 의뢰인이 싸우자고 덤벼들면 적당히 합의하는 척하면서 잔금부터 받고 본다. 진짜 악질은 잔금을 받아야 그걸로 보수를 해준다고 되려 으름장을 놓는다. 당연히 잔금을 받으면 일처리는 0.2배속으로 흘러간다. 아예 거기서 멈추기도 한다. 알만한 분덜은 다 아시겠지만 ‘에이~ 그런 데가 몇이나 있겠어’하는 순진한 분께 힘주어 말씀드린다. 그런 데가 아주 많다.
정말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사소한 문제나 며칠 살아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문제는 의뢰인의 눈 보다 턴키 업체의 눈에 먼저 걸려든다. 아무리 내가 구석구석 샅샅이 체크한다고 해도 1년 내내 현장에 있으면서 이걸 업으로 하는 사람의 눈보다 예리할 수는 없다.
사소한 문제라도 먼저 발견해서 조치하는 업체가 진짜 잘 고른 업체다. 인테리어 업체의 대부분은 타일이나 도배 등의 세부 공사를 각각의 전문 업체에 발주해서 맡기는 식으로 전체 공사를 진행한다. 턴키 업체가 하자를 발견하면 그 공사를 맡았던 업체에 요청해서 보수를 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마감을 잘하는 업체는 내 대신 나보다 더 꼼꼼하게 공사의 결과물을 살펴서 내 대신 시공 업체에 하자 보수를 요청하는 곳이다. 턴키 계약을 했을 때의 이점도 여기에 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공사 세부 내역에 따라 여러 업체를 만나 따로 계약을 하면 그들에게 나는 한 번 하고 말 손님이지만 턴키 업체의 경우 꾸준히 일거리를 물어다 줄 곳이니 시공이나 하자 보수에 아무래도 더 적극적을 개연성이 높다. 터미널 앞 식당과 기사 식당의 차이랄까. 그러니 턴키 업체는 당연히 마감과 하자 보수에 있어서 셀프 인테리어를 했을 때 보다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잘하는 업체가 잘 고른 턴키 업체다.
적어도 이런 업체들은 후기와 평판에도 신경을 쓴다. 한두 해 장사하고 말 생각이 아니기에 인스타나 블로그에 포트폴리오도 열심히 올린다. 인테리어 업체를 정하기 전, 견적 상담을 요청할 업체를 물색할 때 해당 지역 카페나 인테리어 카페 회원의 평가와 인스타, 블로그에 포트폴리오를 잘 정리해서 올리는 곳을 후보군에 올려놓았던 보람이 여기에서 나타난다. (그런 거 안 하는 업체가 모조리 한두 해 바짝 땡기고 도망갈 곳이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 집 하자 보수 내역
마감 일과 이사 전 입주 청소일, 새로 구입한 가구와 가전제품 설치일을 거치며 몇 가지 고쳐야 할 부분이 눈에 띄었다.
1. 싱크대 맞은편 주방 수납장의 키큰장에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를 수납하려고 사용하고 있는 제품의 모델명을 미리 공유했는데 에어프라이어의 칸 높이가 낮아 수납할 수 없었다.
2. 거실 욕실의 조적 젠다이 졸리컷 타일이 살짝 벌어진 부분이 있었다.
3. 안방 욕실의 하부장 서랍 첫 번째 칸이 넣고 뺄 때 뻑뻑했다.
4. 싱크대, 주방 수납장의 상부장 문짝 아랫단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5. 3연동 중문 제일 안쪽 문짝이 레일에서 조금 이탈되었는지 문틈이 벌어져 있었다.
이 가운데 1번은 이사 와서 직접 에어프라이어를 넣어보다가 발견한 것이므로 마감 때는 발견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3번은 1번을 고치러 온 가구업체 분께 말씀드려서 즉석에서 해결했다. 5번은 알고 보니 시공 하자가 아니라 이사할 때 일하시는 분이 잘못 건드려서 밀려 나온 것이었다. 아무튼 오셔서 바로 잡아주셨다. 2번과 4번은 내가 먼저 요청하기 전에 턴키 업체에서 먼저 발견하고 타일 업체와 가구 업체에 수리를 이미 요청한 상태였다.
사실 자잘한 보수 내역은 위의 다섯 가지 말고도 더 있었다. 대부분 내 눈에 띄기 전에 턴키 업체에서 먼저 발견하고 손을 써 놓아서 이미 보수가 되어 있거나 입주 직전에 시공 업체가 방문하여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이미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3D 시안까지 확인하고 나서 공사에 들어갔던 터라 인테리어 공사의 결과물에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막눈으로 보기에도 시공의 디테일이 좋아 보여서 내심 만족스러워하던 차에 마감과 하자 보수 과정을 지나오면서 턴키 업체를 잘 선택했다는 확신이 들었다.(내가 이런 기분이 들었다는 건 정말 턴키 업체를 잘 골랐거나 턴키 업체의 눈탱이가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걸 의미한다) 하자 보수 요청을 했을 때 단 한 번도 바쁘다는 핑계로 늑장을 부리거나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치명적인 하자가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누차 얘기하지만 공사도 사람이 한다. 실수는 덜 할수록 좋지만 더 중요한 건 실수한 이후에 그것을 바로 잡는 일이다. 인테리어 업체와 의뢰인의 사이가 제대로 삐끗하는 열에 아홉은 마감과 하자 보수 때문이다.
입주
7월 5일, 드디어 모든 관문을 지나 대망의 입주일을 맞았다. 이사라는 최종 보스까지 물리치고 난 후에 자정이 넘어 혼자 집을 둘러봤다. 집을 계약하기 전에 다른 분들이 살고 계신 집을 둘러본 것을 시작으로 실측할 때, 계약 후 빈 집에, 공사가 시작되고 철거가 한창일 때와 그 후로도 공사 기간 내내 한 주에 한두 번씩 매번 구석구석 둘러봤던 그 집이 이제 내가 사는 집으로 바뀌었다. 3월부터 대략 넉 달 동안 전속력으로 달려오느라 번아웃이 올 뻔한 적도 있었다. 집을 구할 땐 집을 구하느라, 인테리어 업체를 알아보고 견적을 구하러 다닐 땐 내가 살 집에 큰돈 들이는 일이라 뭐하나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인알못의 인테리어 턴키 시공기'의 마지막,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후기는 우리 집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던 턴키 업체 대표와의 인터뷰 같은 대화로 갈음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