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잉과 버피 사이, 기계는 죽어도 모를 도파민
이젠 정말 AI가 필수인 시대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AI가 보고서를 쓰고, 복잡한 고민도 대신해 준다. 나의 연애, 커리어 고민도, 복잡한 코드도 최적화 해준다. 효율이 최고인 세상에서 기술은 우리의 모든 불편함을 제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지독한 불편함 속에 스스로를 던져두고, 훈련 후 침대에 대자로 엎드려 이 글을 쓴다. 하이록스(HYROX) 훈련 뒤에 찾아온 허리의 뻐근함을 느끼면서 ..
1. AI가 침범하지 못한 매슬로의 꼭대기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를 '자아실현'이라고 했다. 과거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지능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그 정점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AI가 그 영역마저 위협한다. 심지어 미술, 음악 예술 창조 부분까지..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수준을 넘어, 수십 년 공부한 전문가의 지식을 복제하고 인간의 자아실현 수단이었던 창작과 분석까지 대신해 주는 세상이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 있다. 바로 ‘육체의 고통 뒤에 오는 뿌듯함'이다. AI는 내 대신 지적 자아실현은 해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내 몸 대신 땀을 흘려줄 순 없다. 로봇이 입력된 값에 따라 트랙을 뛸 수는 있겠지만, 극한 훈련을 마치고 인간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터져 나오는 엔돌핀과 도파민의 소용돌이를 느끼게 만들어 줄 순 없다. 운동 후 온몸에 퍼지는 이 호르몬의 폭발과, 훈련이 끝나고 누워 헉헉거리며 마시는 에너지 드링크의 맛, 와 해냈다!!!! 라는 외침,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이 만질 수 있는 가장 생생한 기분의 실체다
2. 머리 대신 몸으로 쓰는 반성문
처음 하이록스를 시작할 때 거창한 결심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남들 다 하니까, 혹은 코치님이 툭 던진 “하이록스 하실래요?”라는 말에 가벼운 호기심으로 발을 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순간에, 혹은 운동을 마친 후 나는 이 고통에 나만의 의미를 더한다. (의미부여를 하면 기억이 더 특별해진다고 믿는다)
이 고생에 나만의 서사를 더해본다. 어릴 적 큰 수술을 받았던 나는 체육시간에 운동장 잔디밭에 앉아 친구들이 뛰어노는 걸 구경만 해야 했다. (몸이 회복한 후에는 그냥 쉬는 게 익숙해지기도 했다. 운동을 하기 싫은 더운 날엔, 재미없는 체육 수업날엔 쉬어야 한다며 핑계 대며 구경하기도 했다 ㅋㅋㅋ 죄송합니다 쌤 ㅠㅠ_ㅠ)
하지만 온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뛰어놀며 땀 흘리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부러움. 뛸 수 없었던 나는 대신 공부를 선택했다. 투입한 만큼 성적이 오르는 게 재밌어서 1등도 했지만(자랑), 운동 앞에서만큼은 늘 “나는 재능이 없어”라는 말 뒤로 숨곤 했다.
하지만 공부가 그랬듯, 운동도 결국 나 자신과 정직하게 부딪치는 일인 것 같다. “그때는 못 뛰었지만, 이제는 할 수 있어!”라는 이 담백한 확신을 얻기 위해 나는 하이록스를 위해 땀을 흘린다. 어릴 적 운동장 구석에서 했던 가장 오래된 약속을 이제야 지키는 기분이다. (역시나 의미부여를 한다)
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초라도 기록을 앞당기기 위해, 플레그를 얻기 위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트랙을 도는 70대 노인까지.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풀러, 다 각각의 빛나는 서사들이 있다.
AI가 모든 걸 대신해 주는 차가운 세상에서, 각자의 이유로 모여 살을 부대끼며 땀 흘리고 응원하는 이 뜨거운 열기야말로 도파민이 폭발하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열정이다.
3. 가장 인간다운 반란
모든 것을 최적화하는 AI 시대에 하이록스는 지독하게 비효율적인 짓이다. 80kg의 슬레드를 밀고, 지치지 않는 로잉과 스키를 타고, 끈질기게 버피를 하는 지속적인 훈련들. 거대 언어 모델(LLM)인 라마(Llama)가 이 행동을 분석한다면 아마 '최적화 오류'라며 경고창을 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봇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영역이 바로 여기 있다. 훈련을 마친 뒤 침대에 대자로 뻗어 있을 때 찾아오는 이 묵직한 근육통과 뻐근함. 땀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호르몬이 주는 쾌감은 기계는 절대 알 수 없는 맛이다. 로봇은 죽어도 땀을 흘리지 못하니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사실 훈련의 여파로 허리가 꽤 아프다. ㅋㅋㅋㅋ 내 비효율적인 몸뚱이...ㅠㅠ 이 뻐근함마저 즐겨봐야겠다..
저마다의 결핍과 약속을 안고 참여하는 모든 하이록스 참가자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트랙 위에 선 그 모든 빛나는 순간들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