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러닝)도 최적화가 되나요?

핑계라는 데이터만 가득하던 시스템에 달리기 기록을 남기기까지

by 네덜란딩 민수현

핑계라는 이름의 오래된 데이터


내 일은 지저분한 코드를 정리해 실행 시간을 1초라도 앞당기는 것이다. 흩어진 지표를 연결해 비즈니스의 구멍을 찾아내고, 파편화된 숫자 사이에서 비즈니스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온갖 시스템을 최적화하던 내가, 최근 가장 비효율적인 시스템인 '내 몸'을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답 안 나오는 이 몸뚱이 리소스를 어떻게든 돌려보겠다고 말이다.


사실 고백하자면, 꽤 오랜 기간 '핑계'라는 데이터 속에서 살았다. 어릴 적 몸이 약했다는 과거의 기록은 성인이 된 나에게 아주 훌륭한 회피 논리가 되어주었다. "난 원래 체력이 안 좋아", "이런 날씨엔 무리야." 같은 것들. 하지만 10번 남짓 달려보며 깨달았다. 몸이 안 따라줬던 게 아니라, 안 될 이유만 성실하게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낡고 오래된 이 핑계 로그들을 하나씩 지워내야 할 때다.


1. 호흡의 동기화: 웨이트의 로직을 러닝으로

데이터 환경이 바뀌어도 핵심 알고리즘은 변하지 않듯, 호흡도 그랬다. 웨이트나 필라테스를 할 때 힘을 쓰는 순간에 맞춰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던 그 정직한 방식. 나는 그 로직을 러닝의 리듬에 그대로 동기화해 보았다. 발걸음의 박자에 맞춰 숨을 뱉으먀 입으로 "후, 후" 하고 일정하게 내뱉는 것. 웨이트에서 바벨을 밀어 올릴 때 숨을 내뱉듯, 지면을 차고 나가는 순간에 맞춰 호흡의 박자를 털어냈다. 단순히 숨을 쉬는 게 아니라 달리는 리듬과 내 숨소리를 하나로 맞추자, 신기하게도 몸의 과부하가 줄어들었다. 호흡이라는 변수 하나를 발걸음에 동기화했을 뿐인데,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출력값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 인프라 업데이트: 신발이 주는 안정감

처음엔 러닝화도 아닌 필라테스용 신발을 신고 나갔다. 이건 마치 풀옵션 배틀그라운드를 그래픽 카드도 없는 저사양 노트북으로 돌리는 격이었다. 인프라가 받쳐주지 않으니 발목과 발바닥엔 이내 '통증'이라는 에러 메시지가 떴다. 최적화의 기본은 소프트웨어 이전에 기본 하드웨어임을 깨닫고 나서야, 제대로 된 러닝화를 갖췄다. 비로소 나의 시스템이 튕김 없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디제로 만세!)


3. 환경에 따른 최적화: 평지의 효율과 언덕의 처리 능력

달리는 길의 환경에 따라 내 몸의 엔진도 모드를 바꿔야 한다. 시원하게 뻗은 '평지'는 마치 고성능 서버에서 가벼운 쿼리를 돌리는 것처럼, 적은 리소스로도 화려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구간이다.

평지에서의 속도감은 없지만, 업힐을 오르며 쌓이는 근육은 내 몸이라는 시스템을 지탱하는 가장 확실한 기초 데이터가 된다. 비유는 거창해도 결국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도, 일단 시작한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 이때 나를 버티게 하는 건 그동안 탄탄하게 쌓아온 근력과 지구력이라는 '기초 체력'이다. 이 부하 테스트(Stress Test)를 통과하고 나면, 내 몸은 비로소 한 단계 더 단단하게 업데이트된다. 이 한계 지점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업힐과 끝까지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단계 바뀐다. 막상 달릴 때는 으악 소리가 나도, 해내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장착된다.


4. 페이스 다듬기: 엉망인 코드와 매끄러운 흐름 사이

나의 초반 러닝은 말 그대로 ‘스파게티 코드’ 같았다. 앞뒤 맥락 없이 꼬여버린 복잡한 코드처럼, 의욕만 앞서 숨은 가쁘고 다리는 무거운데 정작 속도는 나지 않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좋은 코드의 핵심이 단순히 길고 '빠른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듯,

러닝도 결국 ‘지속 가능한 리듬’을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초반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금세 멈춰 서는 게 아니라, 내 몸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최적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 복잡하게 꼬인 코드를 깔끔하게 정리해 나가는 작업처럼 내 몸의 리듬을 군더더기 없이 다듬어갈 때, 나의 몸도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5. 정직한 운동: 의욕과 조절 사이의 균형

결국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인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다.

흘린 땀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얼마 전에는 기분이 너무 좋아 무작정 속도를 높여 달렸다가 무릎 통증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며칠을 강제로 쉬고 나니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 게 얼마나 귀찮아지던지.


데이터 분석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코드만 붙들고 있다 보면, 정작 중요한 통찰 대신 거북목과 통증만 남을 때가 있다. 의욕만 앞선 '오버 페이스'는 시스템을 망가뜨릴 뿐이다. 내 의지만 믿고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신호를 읽으며 적절히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 결국 이 '정직하고 꾸준한 반복'만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제 겨우 10번 정도를 뛰었을 뿐이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처럼 매끄럽고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내 안의 낡은 핑계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중이다.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관을 러닝과도 연관지어 보았다.

몸무게보다는 자세와 눈바디를 (숫자보다 탄탄해진 몸의 선을)

외모보단 표정을 (보여지는 모습보다 내가 느끼는 활력을)

성과보다는 과정을 (기록보다 밖으로 나가서 달리는 습관을)

최적화라는 건 사실 거창한 게 아니다. 운동이든 뭐든, 지금 당장은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아도 데이터는 계속 쌓일 것이다. 결과값이 찍히지 않는 순간에도 밑바닥에는 로그가 남는다는 걸 알고, 오늘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한다. 최적화는 어떤 완성된 성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로운 데이터를 쌓으며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 러닝 로그 (v0.0.7)

상태: 정상 작동

특이사항: 무릎 통증으로 인한 일시 정지 후 복귀.

분석: - 호흡법 동기화: 숨 가쁨 완화. 핑계 데이터 회피율 80% 감소.

다음 목표: 속도 욕심 없이 정해진 거리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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