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썸'에서 잔잔한 '안정기'로
운동을 시작하면 뇌는 물리적인 변화를 겪는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견디며 근육을 사용하는 동안, 우리 뇌 속에서는 신경가소성이라는 마법이 일어난다. 신경가소성이 좋은 이유는 우리 뇌가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경험에 따라 스스로를 재설계할 수 있는 유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뇌를 더 밝게 깨우고, 거친 생각을 예쁘게 다듬어주며, 일시적인 쾌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회복탄력성을 선물한다.
사랑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의 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단순히 감정의 소용돌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몰입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하고 어제보다 더 예쁜 색감으로 세상을 채색한다. 꾸준하게 운동을 유지하는 그 성실한 모습과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은, 누군가를 꾸준히 알아가고 좋아하게 되며 느끼는 그 깊은 행복감과 꼭 닮아 있다. 그래서 깊고 고요한 호수 같은 연애 감정과 닮아 있다.
시작은 늘 어렵다. 익숙한 침대 속의 안락함, "내일부터 해야지"라는 달콤한 침대의 유혹, 바쁘다는 핑계와 친구와의 약속. 때로는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운동이라는 의구심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연애도 누군가를 마음속에 품는 건 늘 어렵다. 성인이 되어 더 어른이 되어갈수록 느끼는 건,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내 마음속에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에 대한 실감이다. 운동 또한 수많은 종목 중 내가 좋아하고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것'을 찾아내는 과정과 같다.
운동을 시작한 첫 몇 주, 몇 달은 모든 것이 새롭고 재밌다. "어? 이런 자세가 되네!", "이 무게도 들 수 있네?" 하며 내 몸의 가능성을 하나씩 발견해 가는 매력에 푹 빠진다. 아무 옷이나 입고 나가던 시작과 달리, 운동이 재밌어지니 예쁜 운동복도 사고 싶고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자꾸만 점검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운동 세션이 기대된다.
연애 초반, 누군가를 완벽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설레고 간지러운 마음으로 상대를 생각하는 시기는 귀엽고 밝은 것 같다. "이 사람은 이런 모습이 있었네?" 하고, 연락 한마디에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하며 미소 짓는 모습.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은 운동에서 새로운 자세를 익히는 기쁨과 닮아 있다. 하나하나 시작되는 그 기대감과 낯선 설렘, 그리고 그 사람을 떠올릴 때의 간지러운 기분은 오직 시작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감정의 일렁임이다.
어느덧 퍼포먼스가 오르고 운동이 일상이 된다. 이제 삶에서 운동을 뺄 수 없는 단계다. 많이 먹은 날엔 "더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고,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 운동은 뭐 하지? 하체 날인가, 아니면 러닝을 할까?' 혹은 '오늘은 몸 상태가 무거우니 조금 쉬어갈까?'라고 고민하는 것처럼, 일상의 시작에 운동이 당연하게 자리 잡는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스레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제일 먼저 차오른다. '오늘 밥은 잘 챙겨 먹었을까', '보고 싶다'는 마음이 공기처럼 당연해지는 것이다. 꾸준히 함께 쌓아온 시간은 서로의 분위기와 결을 닮게 만들고, 그 깊은 안정감 속에서 보이지 않는 단단하고 입체적인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이런 무던한 날들의 운동이 나의 탄탄한 루틴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활력과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듯, 꾸준한 사랑의 시간 또한 나만의 고유한 매력이자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된다.
나는 너무 서로에게만 몰입하고 서로가 전부인 연애보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를 응원하고 점차 확장하며 스며드는 연애가 더 건강하다고 믿는다. 무엇이든 과하면 결국 지치기 마련이다. 운동도 비슷하다. 인대가 늘어나거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내 몸의 컨디션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입장할 땐 화려하고 즐겁게 롤러코스터를 타지만 결국 퇴장 시간이 정해져 있는 놀이동산 같은 연애보다, 서로의 보폭을 맞춰가며 서서히 일상으로 스며드는 잔잔한 산책이 나에게는 더 깊은 사랑에 가깝다. 꾸준한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선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페이스를 알아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상대의 속도에 맞춰 나의 걸음을 늦출 줄 알고, 때로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페이스를 올릴 줄 아는 마음.
마치 더 단단한 근육을 위해 강도를 세밀하게 조절하듯, 사랑 또한 나, 너 그리고 우리의 호흡을 찾아가는 섬세한 마음의 근력이다. 이 보이지 않는 호흡의 조절이야말로 사랑과 운동을 오래도록 지속하게 하는 진정한 힘이다.
권태기는 어쩌면 '우선순위의 재배열'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열기가 한풀 꺾이고 나면, 잠시 미뤄두었던 '나'라는 존재가 다시 선명해진다. 가끔은 운동 대신 친구를 택하고 싶을 때가 있고, 매일 가던 운동이 지겹거나 아예 나가고 싶지 않은 날이 오기도 한다.
러닝을 하려 해도 겨울의 매서운 추위나 여름의 숨 막히는 더위에 예전처럼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고, 단골 헬스장이 공사로 잠시 문을 닫는 예상치 못한 상황도 생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익숙함에 속아 혼자 있고 싶어지기도 하고, 지친 일상에 치여 상대에게 소홀해지며 마음이 멀어지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
러닝 머신 대신 실내 사이클을 타거나, 아침에 잠시 짬을 내어 뛰거나, 헬스장에 갈 수 없다면 집에서 홈트레이닝이라도 할 수 있다. 사랑도 이와 같다. 내가 힘들고 인생에 중요한 일들이 찾아와 우선순위가 ‘잠시’ 뒤바뀐 순간에도 나를 생각하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가기 싫은 마음을 이기고 운동화 끈을 묶는 그 마음처럼, 사랑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태도가 사랑을 지속하고 나아가게 한다.
이별은 때로 예고된 듯, 혹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권태기가 와서, 혹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혹은 예상되듯 서서히 멀어지면서. 마음의 근력이 다해 관계를 지탱할 힘을 잃었을 때 이별은 온다. 이는 마치 유연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벤치프레스를 들려다 근육이 손상되거나, 무리한 페이스로 달리다 발목을 다치는 부상과도 같다. 연애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상태를 살피지 못한 채, 혹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채, 어색한 관계의 온도를 침묵한 채, 서로의 무거운 욕심에만 눌려 있다 보면 결국 서로에게 멍을 남기게 된다. 무리하게 버티다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 그것이 이별의 아픈 단면이다.
반면, 운동이 완전한 루틴이 되듯 사랑이 삶의 배경이 되는 순간도 있다. 단단하게 자리 잡힌 근육은 잠시 쉰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연애 또한 마찬가지다. 때로 상황에 의해 잠시 거리가 멀어질지라도, 그간 쌓아온 신뢰와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은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 단단히 자리 잡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 부족함조차 서로를 향한 빈틈의 여유가 되는 단계.
함께하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진정으로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이 마음은, 어떤 흔들림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삶의 가장 단단한 에너지가 된다.
필라테스가 유행이라서, 혹은 크로스핏이 멋있어 보여서 운동이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운동이 진짜 빛나는 순간은 남들의 시선이 아닌,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꾸준히 쌓아왔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상대의 조건이나 배경, 혹은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는, 없어질 수 있는 보여지는 겉모습에 마음이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런 물질적인 것들은 사랑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과 나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만의 단단한 층을 형성할 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