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만들어낸 새로운 일상들
혼자라도 살아보겠다며 사람들과 싸우고, 생필품들을 사재기하고, 생필품 사재기에 실패했을 땐 마트의 유리창을 깨고서라도 들어가는. 재난이 일어나면 꼭 이런 일들만이 벌어지는 줄 알았다. 내가 본 재난 속 영화의 주인공들은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렸고 제대로 씻지도 입지도 그리고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재난 속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거짓말처럼 너무나도 평화롭다.
항공 쪽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나는 처음에는 '왜 이런 시련은 나에게만 오는 것일까' 철없는 생각하기도 했었다. 코로나19가 아직 중국만의 문제로 여겨졌을 때 가장 직격타로 영향을 받은 곳이 항공업계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 중국, 동남아가 주요 노선인 LCC 항공사에게 중국에서의 바이러스 발생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게 되었다. 관광업은 물론이고 영화관, 식당, 체육관 등 밀폐된 공간에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곳들은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고 단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남자 친구를 만난 지도 한 달이 다 넘었다. 아르바이트를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따로 만난 적도 단 두 번. 그것도 한 번은 놀이터에서 만났고 또 다른 한 번은 카페에서 만났지만 결국 얼마를 버티지 못하고 공원으로 가는 걸 택했다.
이러한 생활이 처음에는 많이 답답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하다못해 혼자서 카페라도 가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지금은 또다시 만들어진 새로운 일상들에 점점 적응을 하고 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 안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그런 낯설었던 생활패턴이 다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루 종일을 집에 머물면서도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코로나19로 공장이 멈추고 관광지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며 모순적이게도 지구의 환경은 더 좋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의 일상에도 이런 변화들이 생겨났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무엇보다도 동생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동생과 점심을 같이 해 먹고 잠깐 산책을 다녀온다던가 엄마가 적어준 해야 할 일 리스트를 함께 하나씩 해치운다. 매일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우리가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디어에서 보아오던 재난의 모습들과는 달리 더 안전할 거라 믿는 어딘가를 향해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집에 머물면서 금요일이면 마스크를 사 온다. 집 앞의 마트에서 먹을거리들이 가득하다. 사실 마음에서는 코로나19가 언제 사라질까, 올해 취업은 할 수 있을까 온갖 걱정으로 불이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내가 재난특별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도 습관처럼 코로나19의 기사를 읽는다. 가끔은 사실 이 모든 게 꿈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이고 하는 요즘. 다시 익숙해진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껏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 날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