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것들

이사를 가게 되었다_2

by 작가H

어렸을 때부터 수첩이나 다이어리들을 참 좋아했다. 취미도 이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수집은 당연하고 나중에는 직접 수첩이나 다이어리를 만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예쁜 표지를 만들고 종이에 펀치를 뚫어 링으로 연결하는 거였다면 나중에는 풀 제본을 하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비루한 실력이지만 하루 이틀 만들다 보니 나중엔 '오? 이건 좀 괜찮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실력으로까지도 나아갔다.


그리고 당연히 수첩과 다이어리들에는 메모가 가득했다. 사실 하나의 다이어리를 끝까지 채우는 끈기는 없어 여기 조금 쓰다가 저것에도 조금 쓰다가 했었지만 모든 메모들에 추억이 있어 쉽게 버리지 못하고 모아 왔다. 그러다 이번에 이사를 하며 짐들을 많이 정리하고 버리면서 예전에 끄적여둔 메모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많은 메모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5살 때 경제적으로 독립하기'라고 적혀있던 메모다. 이 메모를 보면서 두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메모에 스무 살에 바로 독립하겠다고 적지 않았던 걸 보니 내 딴에는 나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며 적었겠구나. 그리고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그때의 나는 스물다섯이 완전한 어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나이를 넘긴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구나 였다.


최근에 탈색을 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자꾸만 흰머리가 생겨났다. 그리고 거울을 볼 때마다 보이는 흰머리들이 또다시 나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그래서 염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탈색을 해버렸다. 주변에서는 탈색을 하겠다는 나를 말리기도 했었고 탈색을 해버린 내 모습을 본 친구들은 '취업할 생각이 없구나'라는 말을 장난 삼아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분명 누군가의 눈에는 취업준비를 하던 내가 돌연 탈색을 해버리는 모습이 철이 없어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란 머리의 나는 여전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고 어학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낸 곳 중 어느 한 곳이 내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면 나는 다시 어두운 색으로 염색을 하게 될 것이다.


저 메모를 쓰던 10대의 나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스물여섯인 내가 취업은커녕 노란 머리에 아직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시간들을 묵묵히 이겨 내다 보면 언젠간 내가 생각하던 모습에 닿아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자기소개서를 쓰고 어학공부를 하는 지금의 이 시간 동안에는 노란 머리를 가진 내 모습을 즐겨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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