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말 말 그대로 스타트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런 스타트업 치고는 제법 되는 인원이 재직을 하고 있는데(물론 이건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트업 치고는 이라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입사한 이후로도 이곳에는 계속해 새로운 인원이 유입되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곳에 입사했을 때와의 총인원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입사를 했지만 또 입사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가 창립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이곳의 첫 시작을 함께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작 이곳에서 이탈했다.
이 사람들이 이탈을 결정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그 이유들을 다 알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곳의 체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곳의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은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여하튼, 이런 나의 짐작뿐인 수많은 퇴사 이유들은 일단 제쳐두고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스타트업의 체계에 관한 것이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에 체계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다녀보지 않은 어떤 스타트업은 직원이 많지 않아도 업무 분담이 확실하고 체계가 명확하게 잡혀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회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고 감히 예상한다. 스타트업이 왜 스타트업이겠는가. 이제 막 시작을 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업무의 경계가 불확실하고 체계도 불안정한 것이 오히려 정상일 수도 있다.하지만 이것이 정상이라고 모든 구성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그랬다.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부서 간 팀원 이동도 잦았고 팀이 서로 합쳐지기도, 팀의 이름이 바뀌기도 그리고 없던 팀이 생기기도 했다.그래 이것이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알겠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이 아주 이해를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회사는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확실하게 팀끼리의 경계가 분명해졌다. 근데 그래서 업무환경이 더 나아졌냐고? 이 대답에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No!
팀의 경계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팀은 세분화되었는데 업무의 경계는 전혀 분명해지지 못했다. 팀의 경계를 확실히 하자면서분명 이제는 내가 속한 부서의 담당이 아닌 일들이 계속해서 우리 팀에게 주어졌다. 이유는 너희 부서 일은 아니어도 예전부터 너희가 했던 것들이니까.혹은 팀의 경계가 분명해졌어도 이 팀에 채용이 끝나기 전까지는 인력이 부족하니까. 너희 팀은 이제 이런 팀이니까 앞으로 이것들을 해야 해. 주어진 업무로도 버거운데 자꾸만 그 외적인 것들도 함께 주어졌다. 아무리 우리 부서의 업무가 아니라고 모든 팀원들이 입을 모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기껏 돌아온 대답은 우리도 채용에 힘쓰고 있어 가 전부였다.
많은 스타트업의 모집 공고를 들여다보면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 우대'라는 글을 제법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보면 '대체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가 뭔데?' 고민하게 된다. 나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라는 것이 뭘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면서 이 문장의 의미가 선명해졌다. 스타트업의 업무 프로세스라는 건 사람이 부족하면 네 일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그 일을 맡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회사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부서가 이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는 글을 제법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보면 '대체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가 뭔데?' 고민하게 된다. 나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라는 것이 뭘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면서 이 문장의 의미가 선명해졌다. 스타트업의 업무 프로세스라는 건 사람이 부족하면 네 일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그 일을 맡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회사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부서가 이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에는 잉여 인력이 없다. 그러니까 이 말은 갑작스러운 퇴사, 병가, 연차 등으로 한 사람의 자리에 공백이 생기면 그곳을 채워줄 수 있는 인력이 미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그 공백을 그대로 비워둘 순 없으니 내부에서 꾸역꾸역 채워내고야 만다. 그것이 설사 그 사람이 현재 몸담고 있는 부서와 전혀 유관하지 않다고 해도. 스타트업이란 그런 곳이다. 새롭게 던져지는 일들이 새롭고 그것을 배워가는 과정이 재미있을 수 있지만 그런 만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부서와 전혀 유관하지 일들이 언제 던져질지 모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