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
모두가 당연스럽게 나를 찾는다
업무 분장과 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당연스럽게 나에게 일이 던져지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그래. 이건 일을 주는 것도 아니다. 던진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걸 왜 우리 팀에게?', '이런 거까지 나한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일은 우리 팀의 그리고 나의 일이 되어 있다. 물론 이렇게 일을 던지는 사람들도 자기들 딴에서는 던지는 이유가 분명하다. '지금은 채용이 덜 되어서 이 일을 할 인원이 없으니까', '나는 그거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까' 혹은 '그럼 누가 할 건데?' 등등. 던져진 일들을 해야 할 사람들이 그 일들을 전부 해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일을 던지는 사람들은 알바가 아니다.
그래 물론 항상 우리 팀과 무관한 업무들만 던져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팀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 던져지기도 한다. 근데 문제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기간 내에 해낼 수 없는 일들이 갑작스럽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그 일이 왜 기간 내에 절대로 끝낼 수 없는 일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을 던지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 사람들은 일을 넘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럼 자기의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어떤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그 사람들은 관심 없다. 그리고 그저 일을 받은 사람들이 기간 내에 그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왜 일과 기간을 줬는데 다 하지 못했냐고 탓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당연스럽게 던져지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계속해 반복되다 보니 일을 던져지는 상황이 그리고 일을 기간 내에 끝내지 못해서 혼나는 상황들이 나에게도 당연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걸 왜 우리 팀한테?, '이걸 왜 나한테?' 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기간 내에 끝내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었다. 이건 분명 우리의 잘못이 아닐 것인데 상황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고 만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 내가 나에게 일을 던지는 사람들의 생각까지 바꿔놓을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당연하게 일을 던질 것이다. 어쨌든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채용이 끝나서 이 일들을 할 수 있는 인원이 생기기 전까지는. 하지만 채용이 아직 다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 일을 내가, 우리 팀이 하는 것이 절대로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까지는 절대로 당연해져서는 안 된다. 이 상황에 당연해지고 안주하지 않아야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은 순간에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다.
그러니까 다들 스스로만큼은 당연해지지 말자.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