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했던 마음의 갈증
어린 시절 내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한참 어린 20대 초반에 부모가 되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도 무겁고 힘든 숙제였을 것이다.
당장의 생계, 여유 없는 하루하루,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삶의 무게… 아무것도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부모님은 아등바등 늘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고 예민하고 힘들었고, 그래서 수없이 싸웠고 아팠고 분노하며 울었다.
엄마는 매일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과 발등 살이 까맣게 죽도록 기도하며 신앙으로 스스로를 견뎌냈고, 아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며 세상 속에서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과 긴장감으로 늘 예민했고, 그래서 내 웃음소리나 이야기조차도 들을 여유 없이 종종 화가 나있었다.
어떤 날은 다정하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너무 화를 내니까 어렸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놀랐고, 무서웠다.
그런데 나에겐 엄마 아빠 밖에 없으니 두 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기분을 좋게 해 드리는 것, 눈치를 보며 나를 수 없이 검열하고 말을 고르고 고르며 착하고 순종적인 딸이 되는 게 생존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있다고, 내가 노력해서 집안 분위기를 바꾼다면, 내가 중간 역할을 잘해서 두 분이 화해할 수 있게 돕는다면, 우리 가족은 분명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우리 가족이 행복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각자가 아프고 힘들었지만 견뎌냈고, 생채기에 피가 나도 움켜쥐고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세월이 흘러 나는 결혼을 앞두며 예비신랑이랑 다툴 때마다 스스로 의문을 가졌다. 둘 다 싸우고 싶지 않은데. 그게 너무 싫은데 우리는 왜 싸우지?
스스로의 방식이 정답이라는 전제 하에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 상대에 대해 서운함부터 깔고 가니 이런 나를 몰라주는 상대가 괘씸하고, 이해해 주고 안아주면 좋을 텐데 먼저 해주지 않아 서운하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 건데 그걸 안 해줘서 허전함을 느꼈다.
나를 이제 안 사랑하나? 내가 귀찮아졌나? 이제 와서 내가 필요 없어졌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의 거리를 벌리고 그러다 보면 혼자 초조해졌다.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쓸데없는 망상처럼.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오빠의 행동에서 나는 저런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상처받지?
스스로 너무 이상함을 느끼고 이 괴로움 근본을 찾아 해결하고 싶었다.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봤다. 그 원인은 정말 내 어린 시절에 있었다.
내 말들에 반응하지 않던.
내 웃음이 시끄럽다고 하던
내 눈물이 꼴 보기 싫다고 했던
내 수다가 정신사나우니 입을 다물라고 말하는
내 포옹이 귀찮으니 저리 좀 가라고 밀치는
내 고민이 상대에게 기분 나쁨을 전가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비난하는
내 사랑 표현이 애정 결핍이냐고 지적했던 그 모든 것.
머리를 쥐어박고, 내가 문이라도 소리 내어 닫으면 맞았던 기억.
내 행동에 반응하지 않거나, 짧거나, 기대보다 건조한 반응이 나오면 저런 말들로 나를 밀어냈던 상처된 말과 행동에 대한 학습된 기억이 당연하게 재생되는 것이었다. 내 뇌 속은 비상사태 경보가 울린 셈이다.
너 이러다간 버림받아! 네가 싫어졌을걸?
나는 더 노력해야 했고, 아빠의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며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필사적으로 찾아 애썼다.
수없는 밤을 혼자 베개가 젖도록 울었다.
그냥 어린 나는 사랑을 받고 싶었다.
차가운 아빠에게 상처받은 어린 엄마는 예민했다.
나에게 넘치도록 사랑을 줬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엄했고, 어쩌면 기분에 따라서 나는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함께 자랐다.
나는 사랑이 나를 안정적으로 지켜줄 것이란 믿음을 모른 채, 사랑을 받아도 불안하고 그게 의심스럽고, 부족하다 느끼면 끊임없이 서운하고 갈증 나는 그런 어린아이를 품고서 여태 살아온 것이다.
사실 정말 꼭꼭 그럴듯하게 숨겨놨었고, 나 스스로를 정말 많이 돌아보고 나름대로 훈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앞에선 맥없이 작은 말 하나에도 큰 생채기를 느끼는 무력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변함이 없었다.
부모님이 나를 방치하거나 학대를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방학이 되면 어디든 데려가 추억을 만들어주고, 삼시세끼 정성스러운 집밥을 먹이고, 계절에 맞는 예쁜 옷을 사입히며, 늘 잠들기 전 사랑한다 말해주고, 나에게 심한 말을 하면 후회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분들이었다. 후회하고, 애쓰고, 반복하며 다시 또 노력하는 그런 나날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내게 주려고 노력한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준 상처보다 더 큰 사랑을 행동으로 마음으로 쌓아온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불안을 그냥 덮어만 두고서, 밝고 다정하고 잘 웃으며 자존감 넘치는 듯 보였던 그 모습 뒤에 너무나도 무겁고 우울한 나를 겹쳐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우울한 습관이 내 사랑을.
내 예비신랑에게 투영해서 나는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끊어내고 우울한 습관을 버려야 함을 알고 있기에, 나는 스스로의 나쁜 화법과 생각을 떨치는 훈련을 견디기로 했다.
익숙한 감정길을 틀어 새 길을 만들려고 억지로 억지로 파고, 긁고, 다독이며 새로이 걸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게 거절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도,
내가 싫어진 것도 아닌 그 사람 방식의 사랑임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훈련.
어떤 형태로든 사랑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고
나를 믿고
내 삶을 긍정적으로 안아주는 것.
언제든 스며들지 모르는 그런 일어나지도 않은 불안에 허덕이지 않도록 나를 먼저 안아주는 것.
사랑은 어디에나 있음을.
그리고 그건 타인이 나를 채워주는 것을 기다림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고 믿음으로서 시작됨을 배우며 다시 사랑을 처음부터 쌓아가고자 한다.
사랑받지 못해 줄 줄 몰랐던 부모님을 사랑하며.
어떤 형태로든 사랑은 늘 존재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