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ola 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수 Jun 12. 2023

깁스에 묻혀버린 남미행    

Hola 페루 2 

지난해 중장년 취업 상담센터에서 일하면서 공교롭게도 마지막 상담자는 '내'가 되었다. 내담자를 위한 상담 자료를 찾던 중 눈에 들어온 <보건 젠더 부문 봉사단원 모집> 공고. 제일 먼저 들어온 단어는 '젠더'였다.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단숨에 지원서를 써내려 갔다. 그리고 그곳은 페루, 남미의 관문 아닌가?

지원서를 쓸 때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남편 S와 연로하신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였다. 그러나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서류 심사, 면접, 적성 검사와 신체검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고, 사실 붙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서류와 면접, 신체검사까지 마치고 최종 합격! 

마음으로만 생각했던 '남미에서 살겠다'는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S는 나의 남미행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격려해 줬다. 아, 이렇게 남미를 가게 되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서류 준비와 교육이었다. 

 

그런데 최종 합격 발표가 난 며칠 뒤 새벽, 눈길 운전 대신 걸어서 수영장에 가겠다고 집을 나섰는 데 그만 눈길에 미끄러져 오른손 팔목 골절을 당하고 말았다. 119를 불러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는 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 수술이라니’, 다친 팔 보다 줌(Zoom) 교육이 당장 모레부터 시작되는 데 수술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행히 수술 스케줄이 다음 날로 일찍 잡혔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돌아오니 아픈 팔도 팔이었지만 심란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깁스를 한 오른팔, 이 몸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남미행이 깁스에 묻혀 이대로 좌절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레 포기할 수는 없었다. 수술한 팔이 회복되어서 남미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S가 노트북 등 교육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병실로 가져다주었다. 수술 바로 다음 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나는 병원 투혼으로 줌 교육을 마치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미, 페루에서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