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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Mar 25. 2017

정전 토크쇼

10. 하늘은 온통 별밭이었다

캄캄한 밤. 가로등과 누군가의 집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조명삼아 에멜리네 집으로 가는 공터에 앉아 에멜리, 아이셀의 아들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공사하다 남은 자재가 무작위로 쌓여있는 돌더미 위에서 희미한 빛에 의존해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팟-


짧은 파열음과 함께 갑자기 모든 빛이 사라졌다. "엄마야!" 한국말이 튀어나온 나를 보며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종종 이렇게 전기가 나가곤 해." 에멜리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이 어둠이 익숙한 듯 보였고, 내게 구운 '함시(생선)'를 주며 자신을 '함시 아주머니'라고 부르라고 했던 한 아줌마가 종종걸음으로 집에 들어가 작은 라이트를 하나 가져왔다.



그녀가 가져온 희미한 불빛에 의존해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마을 바보라고 불리는 한 소년이 자기는 선생님이라고 소개한다. 그러자 함시 아주머니가 "쟤 며칠 전까지는 자기가 의사라고 믿었다"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빙글빙글 돌린다. 정신이 나갔다는 것이다.


자기는 영어를 가르킨다며, 헬로? 헬로! 를 연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유쾌하게 웃었다. "델리!"라고 외치기도 했다. 에멜리에게 물어보니 '바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누구도 불쾌해하지 않았고, 누구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함께 놀리고 웃으며 우리는 시간을 보냈다.


불이 꺼진 오피스마할리시에서 보이는 것은 저 멀리 화려한 금빛의 마르딘과 하늘의 별 뿐이다. 어느새 눈은 어둠에 적응했고, 그렇게 함께 웃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온통 별밭이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모두 조용히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았다.


별빛에 의지해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며 이어나가는 대화는, 환할 때보다 오히려 서로를 더 잘 보게 만든다. 아무도 어둠을 무서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며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밤의 공기를 마시며 돌무더기 위에 앉아 처음으로 마음을 편하게 놓아본다. 


그러다 갑자기 '팟-' 소리와 함께 가로등에 불빛이 다시 들어왔다. 사람들은 "와~"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마을에 있는 집 창문에도 하나 둘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개들은 화들짝 놀라며 마을 저편으로 사라졌다.


빛을 되찾은 오피스마할리시는 그렇다고 많이 밝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작은 집 창문들이 따뜻한 색으로 빛나고, 도로의 개들이 눈에 들어오며, 돌무덤이 가로등 빛을 반사해 주황빛으로 빛나게 되었을 뿐이다. 정전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서, 그들의 마음의 여유가 한없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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